▲오후 3시 2분 시청앞
빈진향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르신 서너 분이 모여들어 잠시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어르신 한 분이 송전탑을 왜 반대하는지, 보상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따지듯 물었다. 일행 중 다른 분이 분위기가 격렬해지는 걸 걱정해서 그냥 가자고 막아서는데, 김정회씨가 "제가 지금 할 일이 없으니까, 답변을 드릴게요. 선생님과 제가 생각이 다르니 선생님도 제 말에 반박하세요. 이렇게 토론하면 좋은 거 아닙니까?"라며 붙잡았다.
"저희가 왜 반대하냐면 밀양 주민의 생명과 재산에 엄청난 피해가 납니다. 건강은 십년, 이십년 후에 나타나는 피해고, 당장에 재산권 행사가 안 됩니다. 땅을 천 평 가지고 있으면 평당 십만 원만 해도 1억 아닙니까, 그런데 1억이라는 재산이라도 살 사람이 없으면 재산이 아니지 않습니까? 송전탑 때문에 시세보다 낮게 내놔도 땅을 사겠다는 사람 없고 재산가치 없다고 농협에서 담보 대출도 안 해줍니다.국민들은 몇 사람의 이권 관계 이런 걸로는 귀를 기울이지 않아요. 언론에서는 우리가 정당한 주장을 해도 실어주지 않습니다. 정부와 한전이 언론을 장악하고 있어서 한전 측 입장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알리고 싶어도 알릴 방법이 없고 그러니 단식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라도 저희 말 좀 들어달라고요." 잠자코 듣고 있던 다른 어르신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가 철탑 측량사에요. OO건설에서 27년 근무했거든. 다른 데는 다 세워졌다는데, 다른 데는 문제없는데, 왜 그래요, 밀양은?" "다른 지역은 (송전탑이) 높은 산으로 가서 주민 피해가 없게 됐는데 밀양은 권력자의 땅이 있어서, 뭐가 어때서, 꼬불꼬불, (노선이 정해져) 동네 앞산, 뒷산, 심지어 면사무소 앞에까지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합리적으로 노선을 정하면, 대통령이 걸리든 누가 걸리든 원칙대로 하면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철탑이 마을로 가면 안 되지. 근데 얼마나 가까워요?""우리 집에서 보면 (서울시청 신청사 입구에서 광장 맞은편 길 건너의 프라자 호텔을 가리키며) 저기 저 호텔 정도 느낌입니다."처음 문제제기를 한 어르신과의 토론은 서로의 입장을 좁히지 못하고 끝났다.
"나도 고향이 경상도에요. 경상도 사람 멋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재산 피해가 심하다…. 그래도 몇 사람의 이권 가지고 매스컴에서도 들어주지 않는 걸로 이러는 건…." 이 분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대승적으로 이해해달라'던 전 산업자원부 장관, 국무총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보수 언론이 사람들을 학습시키는 것이 참 무섭게 느껴졌다.
"그니까 현장을 가 봐야 해. 이건 한전만 알어, 한전만."자리를 떠나면서 철탑 기술자로 수십 년 일했다는 그 분이 남긴 말씀이 실제로는 어떤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내겐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송전시설 경과지 선정에서부터 사업추진, 공사를 진행하는 데 관련한 모든 권력과 정보를 한전이 쥐고 있다. 피해 주민의 이해를 구하거나 합리적인 토론과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조건 밀어붙이면 된다는 한전의 고압적인 자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