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소리 내 울지않는다> 표지.
이와우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라는 책을 집어 든 것은 이런 이유였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그린 이 시대 50대 인생보고서'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한국사회를 움직여 왔던 세대이지만 책 제목처럼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그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이제는 50~58세가 된 베이비부머는 단어가 의미하듯 전쟁 직후에 태어난 세대이다. 모든 것이 파괴된 전쟁 직후에 태어났으니 '58년 개띠'라는 말처럼 삶의 시작부터 험난했다. 험난한 세상에 태어난 이들의 운명 같은 주제곡은 사이먼과 가펑클이 1970년 발표한 <이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였다. 그들은 1960년대까지 지속된 '우유부단한 근대'를 끝내고, '1980년대에 본격 개화한 현대'로 넘어가는 다리역할을 청춘시기인 1970년대부터 몸 바치고 수행해야 하는 '가교세대'가 되었다.
가족 내에서도 전통적인 유교문화가 기본인 부모세대와 자기주장과 개성이 강한 자식세대 사이에 '쥐어 짜이는 세대'이기도 했다. 부모로부터 제대로 지원받은 것은 없지만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효도관념이 몸에 배어 부모봉양의 의무를 짊어지면서도, 동시에 자식교육에도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세대이다. 시대적 과제 앞에서 자신들의 자아는 억제한 채, 나라와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험난한 세상의 다리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런데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 온 그들이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 해마다 백만 명씩 쏟아져 나온다는 은퇴의 '크레바스'다. 무연금, 무소득 기간이라는 소득절벽인 크레바스가 퇴직한 50대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은퇴에 대비해 모아놓은 재산도 없이 자식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는데, 자식들은 보답은커녕 기약 없는 백수신세다. 대출금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 유일한 재산인 아파트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다. 세상의 다리가 되어 헌신해 왔건만 정작 자신들의 다리는 마련하지 못한 이들을 송호근 교수는 '빈곤층 입주를 예약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관련기사 : 프레시안
박근혜의 '작전세력' 그들이 위험하다).
열심히 일만 하다가... 50대의 실패 지난 대선에서 이정희 후보가 "나 박근혜 떨어뜨리려 나왔다"고 했을 때 50대들이 엄청난 카톡을 날려대며 분노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가 된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이정희의 발언에서 자신들의 세대와 삶이 부정되고 공격당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들에게 유신은 독재의 그늘과 경제의 발전이라는 이중의 기억이 겹쳐져 있는 시기이다. 현재에 처한 경제적 곤란은 후자의 기억을 더 추억하게 만든다. 지금 절벽 앞에 선 그들에게 그때는 어쨌든 경제가 나아진다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던 시기였다.
책에 나온 3년 전 퇴직한 M씨(54, 전 항공사 직원)의 말도 그러한 입장에 서있다. 대학시절엔 유신독재 반대도 했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새누리당 꼭 거길 지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최소한 박정희 시대를 악으로 매도하는 사람들을 납득할 수 없거든요… (중략)… 우리가 지금 먹고 사는 게 다 자동차, 조선, 중화학, 철강 그런 것들, IT까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다 70년대에 해놓은 거거든요. 정치인들 꼼짝 못하게 해놓은 상태에서. 그러니까 이거를 경제발전에는 잘했지만 독재해서 안 된다가 아니라, 그렇게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중략)… 대학 시절 지내놓고 보니까 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죠, 저는. 어느 새 보니까, 제가 남들이 말하는 수구꼴통이 돼 있는 거예요."(145~146쪽)선거구도가 민주화냐 산업화냐로 짜인다면 50대들은 현재로서는 산업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특히 그들의 유일한 재산인 부동산 값을 지켜줄 안정감 있는 후보가 선택의 제일 큰 기준이 된다.
50대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더라도 과연 그들의 선택 방식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50대가 그 어느 세대보다 사교육 망국론까지 불러일으키며 자식교육에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지만 당사자인 20대는 혜택은커녕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해 왔지만 평안한 노후보다는 막막한 노후가 기다리는 세대가 되었다.
송호근 교수의 지적대로 한국 경제를 반석에 올려놓은 베이비부머들은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인생과 인간다운 사회를 만드는 데 실패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아마도 그 실패는 열심히 일만 한 탓이 아닐까.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나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고민하기보다는 주어진 현실대로 헌신해 온 결과는 아닌지. 내 자식만 챙기다 결국 경쟁의 비용만 높여 놓은 현실처럼 말이다. 고도성장의 열매를 '사유화'하느라 자신을 포함한 미래 세대를 위한 '공적 자산'을 축적하지 못했다는 50대 송호근 교수의 자기 비판은 그래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50대의 주 관심사인 부동산 문제만 해도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과연 박근혜 정부는 그들의 바람대로 부동산 값을 안정시켜 줄까. 박근혜 정부가 많은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확신은 주지 못하고 있다. 사실 집값이라는 것이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참여정부는 부동산 폭등을 막지 못했고, 이명박 정부는 기대와 달리 부동산 침체를 막지 못했다. 미국의 부시정부도 부동산 폭락을 막지 못해 서브프라임 금융위기가 온 것이 아닌가.
현실적으로 한국의 집값을 지켜줄 이들은 누구인가.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20~30대다. 그들이 돈을 많이 벌어 40~50대가 올려놓은 부동산을 내집 마련이라는 생의 목표 아래 살면된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의 주택대책도 생애 첫 주택마련 지원에 방점이 있다. 빚내서 자기 집 마련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20대의 상황이 그러한가. 20대는 백수에 30대는 비정규직 저임에 머물고 있다면 임금 수준에 비해 과도하게 올라간 집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살 사람이 없는데 당연한 것이 아닌가.
50대의 앞날, 20대에 달려있다 결국 50대의 앞날은 지금의 20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20대는 그들의 자식세대다. 20대가 경제적 활력을 찾지 못하면 <고령화가족>라는 영화에서 보듯이 자식 덕은 커녕 늙은 부모가 나이 들어가는 자식을 부양해야하는 고달픈 삶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