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내린 날, 너는 이렇게 비를 피하는구나!

[포토에세이] 가을비 내린 날의 소경

등록 2013.10.01 09:20수정 2013.10.0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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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나무의 열매 하얀 함박나무꽃의 열매가 무르익어가고 있다. 가을비에 더욱 산뜻해 보인다.
함박나무의 열매하얀 함박나무꽃의 열매가 무르익어가고 있다. 가을비에 더욱 산뜻해 보인다.김민수

초여름 피어나 활짝 웃던 하얀 함박꽃에서 이런 열매가 열린다는 것은 기적이다. 함박꽃잎이 떨어지고 이젠 다 끝났다 생각했는데, 꽃이 진 자리에 이렇게 멋들어진 열매가 꽃잎도 가지지 못했던 색감으로 익어간다는 것, 그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랴!


낙산홍 열매 자잘자잘 작은 열매들이 붉게 익었다. 꽃을 피웠을 때에는 저 붉은 빛을 어디에 숨겼었을까?
낙산홍 열매자잘자잘 작은 열매들이 붉게 익었다. 꽃을 피웠을 때에는 저 붉은 빛을 어디에 숨겼었을까?김민수

가을에 익어가는 열매치고 기적이 아닌 것이 어디있을까? 그들은 그 색깔을 어디에 숨겨두고 있다가 인생의 끝자락에 내어 놓는다. 꽃이 필 때 가장 아름다운 줄 알았는데, 열매가 익어갈 때 또한 아름답다.

그들의 꽃 피고, 열매맺고, 익어가는 과정들을 보면서도 감탄할 줄 모른다면 메마른 가슴일 터이다.

불두화 열매 꽃은 엄청나게 많이 피건만 열매는 이렇게 달랑 두 개다. 다른 것들도 그닥 열매를 많이 맺니느 못한다.
불두화 열매꽃은 엄청나게 많이 피건만 열매는 이렇게 달랑 두 개다. 다른 것들도 그닥 열매를 많이 맺니느 못한다.김민수

현대인들은 이들을 바라볼 겨를 없이 몰리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뒤쳐지고, 오로지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누군들 메마른 가슴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큰 맘먹고 의도적으로 자연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이 거대한 경쟁사회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풍접초 풍접초의 꽃술에 앉은 비이슬, 가을비에 풍접초가 힘겨워 하는 듯하다.
풍접초풍접초의 꽃술에 앉은 비이슬, 가을비에 풍접초가 힘겨워 하는 듯하다.김민수

꿩의비름 하늘의 별인냥 피어난 꿩의비름, 별마다 물방울 보석으로 단장하고 있다.
꿩의비름하늘의 별인냥 피어난 꿩의비름, 별마다 물방울 보석으로 단장하고 있다.김민수

풍접초와 꿩의비름은 보랏빛이다. 풍접초는 나비를 닮았고, 꿩의비름은 별을 닮았다. 비오는 날에는 별은 떠있으되 보이지 않고, 나비는 날 수 없다. 보랏빛 꽃색깔만 닮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까지도 닮은 것이 아닐까 싶다.

범꼬리와 노린재 노린재가 범꼬리에 앉아 가을비를 온 몸으로 맞이하고 있다.
범꼬리와 노린재노린재가 범꼬리에 앉아 가을비를 온 몸으로 맞이하고 있다.김민수

노린재가 이렇게 예뻐 보일 수도 있구나 싶다. 겁도 없이 호랑이꼬리에 앉아 가을비를 피
하지도 않고 온몸으로 맞이하고 있다. 노린재, 대담한 놈인가 싶기도 하다.


물봉선과 등에 등에가 물봉선 속에 들어가 꿀을 먹으며 비를 피하고 있다.
물봉선과 등에등에가 물봉선 속에 들어가 꿀을 먹으며 비를 피하고 있다.김민수

가을비가 그리 녹록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듯 물봉선의 꽃잎이 짓물렀다. 꽃등에 한 마리가 물봉선 하나를 차지하고 비를 피한다. 비만 피하는가 살펴보니 그 사이에 꽃술에서 꿀을 딴다.

꽃잎을 우산 삼아 꿀을 따는 등에, 완벽하게 자연과 동화된 삶이다. 인간의 삶도 본래 그러했을 터인데, 이젠 자연을 떠나서도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세상을 살아간다.


개기장과 비이슬 개기장에 맺힌 비이슬, 이슬 한 방울 보다도 작은 씨앗들
개기장과 비이슬개기장에 맺힌 비이슬, 이슬 한 방울 보다도 작은 씨앗들김민수

개기장 개기장이 가을비를 머금고 늘어질대로 늘어져 있다.
개기장개기장이 가을비를 머금고 늘어질대로 늘어져 있다.김민수

풀마다 가을비를 온 몸에 모시고 한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개기장의 작은 씨앗들마다 저보다 더 큰 비이슬을 하나씩 매달고 힘겨운듯 서있다. 그들은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꺾어버릴만큼 비이슬은 잔인하지 않으며, 작은 바람에도 그들을 털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들을 힘겹게 하려는 비이슬이 아니라 땅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 쉬며 가을 정취를 잠시나마 맛보고 가려는 비이슬이 아닐까 싶다.

미국쑥부쟁이 수줍은 듯 피어난 미국쑥부쟁이, 그러나 내년엔 몇 배나 더 넓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갈 것이다.
미국쑥부쟁이수줍은 듯 피어난 미국쑥부쟁이, 그러나 내년엔 몇 배나 더 넓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갈 것이다.김민수

몇 해 전부터 유난히 많이 보이는 미국쑥부쟁이다. 꽃이 무슨 죄가 있으랴만은 한해가 다르게 이 땅을 점령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제국주의의 속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가을비가 내렸다. 그들을 만나고 있을 때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노린재는 당당하게 가을비를 맞이하고, 꽃등에는 지혜롭게 가을비를 피하고, 꽃들은 저마다 비이슬로 자신들을 장식한다.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가을은 더 깊어질 것이다. 이 깊어지는 가을에 잠시 경쟁의 대열에서 벗어나 쉼의 시간을 가지면 정말 뒤쳐질까?
#가을비 #노린재 #물봉선 #미국쑥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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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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