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관광비자이집트 비자는 입국하는 장소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관광용으로 1개월 간 유효하다.
김산슬
알비 마쓰리야!관광용 비자를 보자 '내게는 여전히 고향 같은 이집트인데, 그들에게 난 그저 한 달 동안 이집트를 돌아 보고 떠날 여행객일 뿐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자를 들고 여권을 찾으러 다시 사무실을 나왔다. 자 그럼 이번엔 여권을 찾으러 또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을 사무실을 찾아야 한단 말이지.
그때, 한 남자가 우리를 보더니 반갑게, 그리고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우리를 부르며 손짓한다. 뭐 하는 사람이지? 우리가 뭐 잘못했나? 알고 보니 우리의 여권을 들고 있는 남자였다. 배에 넷뿐인 외국인이 비자만 사고 오면 되는 '그 쉬운' 길을 한참이 지나도 찾아오질 못하자 걱정을 한 것이다. 뭔가 급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니 우리를 걱정한 것인지 혹은 이 멍청한 네 명의 외국인이 언제 올지 몰라 하염없이 기다리다 뻥 터져버릴 것 같은 자신의 방광을 걱정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덕분에 입국신고 사무실은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그는 의자에 앉더니 우리가 건넨 신분증과 여권이 우리 것임을 증명하는 종이를 받아들고 도장을 찍어준다. 내 여권에 도장을 찍으려는데, 가장 뒷장을 펼친다. 으악! 안 되는데!! 내가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이야기했다.
"저기, 미안한데 다른 페이지에 찍어주시면 안될까요?" 그러자 남자가 진한 눈썹을 꿈틀거리며 마뜩잖은 표정으로
"왜" 하고 묻는다. 나는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 이집트 사투리로 이야길 했다.
"난 여행한 순서대로 스탬프가 찍히는 게 좋은데, 제일 뒷장에 찍으면 순서가 엉망이 되잖아요." 남자의 표정이 바뀐다.
"너 이집트 아랍어 할 줄 알아?" 그러면 난 이때다 싶어 활짝 웃으며 손으로 심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난 이집트에 1년 동안 살았었어요! 여긴 내 고향 같은 곳이에요. 알비 마쓰리야!(내 심장은 이집션이야)" 동양 아가씨의 애교 섞인 아랍어 농담이 즐거웠는지 그는 웃으며 내게 어떤 페이지에 찍기를 원하느냐며 손수 여권까지 건네 주었다. 그리고는 꽝, 꽝 하고 도장을 찍더니 웃으며 여권을 건네며 말한다.
" Welcome to Egypt." 역시, 웃는 얼굴에 침 뱉는 사람은 없다. 분위기를 몰아 남은 셋의 여권도 무사히 돌려받고는 출구가 어디인지 안내까지 받은 뒤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사무실을 나섰다.
새 배낭 사수하기그가 알려준 방향으로 출구를 찾아가니, 맙소사 아까 그 청과물 시장 같은 곳이 출구란다. 여기를 빠져나가야 한단 말이지. 옆에선 이집션 보따리 상들이 길고 크고 묵직하고 위협적인 보따리를 어깨에 머리에 짊어지고 우리 곁을 지나간다. 조금만 정신을 놓았다간 짐짝에 맞아 나가떨어지기 십상이겠다.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영화 <매트리스>의 한 장면처럼 허리를 젖히고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곡예에 가까운 모습으로 물품 검사대에 섰다. 말이 검색대이지 맨 흙바닥 위에 덩그러니 세워져있는 보안 검색대는 작동이 되는지 의심스러운 정도로 모양새가 어색하고 우스꽝스럽다.
사실 이전까지 이렇다 할만한 아주 긴 장기 여행을 한 적이 없었던 내겐 원래 캐리어와 큰 백팩 하나가 전부였다. 3년 전 이집트 내를 여행할 때도 거주지인 카이로를 기점으로 동쪽으로 3일, 또 집에 돌아와 다시 짐을 싼 채 남쪽으로 5일 하는 식으로 여행을 다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르단에 온 뒤 친구들과 떠나게 된 두세 번의 여행 때마다 나는 짐 두 개를 끌고 다니는 고생을 해야 했다. 가는 길이 복잡해 그마저도 불가능할 때는 가방 두 개를 매거나 여행용 배낭이 두 개인 이보가 하나를 빌려주는 식이었다. 그래서 이번 이집트 여행을 계기 삼아 어차피 내 가방이 필요할 것 같아 큰맘먹고 구입해 한국에서부터 조달 받은 40리터짜리 배낭을 나는 정말 애지중지 다루었다.
하지만 이미 페리를 탈 때부터 가방은 여기저기 꼬질꼬질 때가 탄 상태였다. 가방을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두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내 가방 뒤에 오던 위협적인 이집션 아저씨의 짐짝이 내 배낭을 가차 없이 내리눌러 진흙 바닥으로 메다꽂는다. 헉! 맙소사.
"You see, Sophie? I told you. you shouldn`t care that too much. Anyway It will be dirty."(거봐, 소피 내가 뭐랬어. 내가 너무 아끼지 말랬지? 어차피 더러워질 거래도.) 흙투성이가 된 가방을 들어 올리며 울상을 짓는 내게 이보가 얄밉게 한마디를 던진다.
요르단에서의 1년 동안 그는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이 되어주는 친구였다. 내가 아플 땐 의사가 되었고 항상 고민 많은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상담사였으며 아빠처럼 또 오빠처럼 언제나 옆에서 자신보다 나를 더 보살펴주던 나이많은 친구. 하지만 가끔 저렇게 잔소리 많은 아빠의 모습을 할 때면
"Yeah Yeah daddy I know.(네네 알았다고요 아빠.)"하고 퉁명스레 대꾸해버리곤 했다. 게다가 항상 반박도 못하게 옳은 말만 하니까 더 얄미운 게 사실이었다. 나이만 비슷했어도 이미 싸우고도 남았을 텐데 그게 항상 분해서 난 언제나 혼자 씩씩거리곤 했다.
더러울 대로 더러워져버린 가여운 내 배낭에서 흙을 대충 털어낸 뒤 어깨에 메고 청과물 시장의 반대편을 나서니, 줄줄이 늘어선 버스와 택시들로 가득 찬 터미널이 보인다. 시계를 보니 국경을 나오는데만 무려 한 시간 반이 걸렸다.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밀려오는 안도감에 웃음을 지었다. 끔찍했던 페리, 시장통을 방불케한 입국 심사장. 카이로에 닿기도 전에 이미 페리에서부터 우리는 이집트다운 환영 신고식을 톡톡히 치른 것이다.
앞으로도 이집트는 우리를 이만큼의 시련과 이만큼의 예상 불가능한 일들 속에 던져 넣을 것이었다. 혹은 그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 이렇게 열심히 소리 지르고 열심히 찾고 또 즐기면 될 것이다. 새삼스레 실감이 난다.
이제 정말, 내가 이집트에 돌아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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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길을 찾을 땐 세 번 이상 물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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