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구텐버그'의 한 장면. 장현덕과 정상훈이 열연 중이다.
정지혜
뮤지컬 <구텐버그>는 2006년 초연했다. 뉴욕뮤지컬페스티벌에서 최우수 뮤지컬대본 부문, 독특한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뮤지컬 창작진의 이야기라는 점도 신선하지만, 리딩 공연이 극중극으로 펼쳐진다는 점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무대에는 단 두 명의 배우와 한 명의 피아니스트가 선다. 크루도 없다. 배우들은 공연 시작 전부터 '버드'와 '더그'로 무대를 분주하게 오가며 공연을 준비한다. 이들은 객석으로 달려 나와 시야가 잘 보이는지 확인하고, 소품의 위치도 직접 확인한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설렘과 긴장으로 가득한 얼굴의 두 사람이 관객을 향해 인사한다.
"뮤지컬 <구텐버그>!" 뮤지컬 <구텐버그> 속 뮤지컬 <구텐버그>는 대형 뮤지컬이다. 등장인물 수도 많다. '버드'와 '더그'는 주조연과 앙상블까지 약 20개의 역할을 나누어 연기한다. 이를 가능케 해주는 것은 모자다. 수십 개의 야구모자는 각 배역의 이름이 적혀 있다. 배역의 이름이 적힌 모자를 쓰면 그 인물이 되는 설정이다.
예를 들어, '구텐버그'를 연기하던 '더그'가 '취객1'로 모자를 바꿔 쓰면 '취객1'이 된다. 그렇다면 수많은 앙상블은 어떻게 표현할까. 줄줄이 소시지마냥 엮인 사람 모형의 종이 뭉치나, 손에 쥐어진 두 개 이상의 모자들이 앙상블을 대신한다. 상상도 못한 기발한 표현 방식에 객석에선 '빵' 하고 웃음이 터진다.
두 청년의 무대는 그야말로 '북치고 장구치는' 격이다. 작품은 초반부에 '큭큭' 대던 관객을 중반부에 다다르면 눈치보지 않고 '크하하하' 하고 웃게 만든다. 웃음의 힘은 무엇보다 강력하다. 먼 길도 정다운 이와 함께라면 금방 도착하듯, 뮤지컬 <구텐버그>도 그렇다. 연쇄탄처럼 연이어 터지는 웃음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어 가깝게 만든다. 관객은 어느새 웃음을 따라 극의 가장 깊은 곳까지 도달한다.
리듬이 빠른 대사들은 연출가 김동연의 손에서 완성됐다. 이번 공연에서 연출과 각색을 맡은 김동연은 살아 있는 한국어 각색과 연기에 용이한 언어들로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그는 작품의 곳곳에 녹아나는 스탠딩 코미디의 미국적 뉘앙스를 능청스러운 언어 감각과 연출력으로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버드'와 '더그'의 고군분투는 진지해서 더 '웃프다'(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 작곡가 '버드'는 스타벅스에서 일한다. 캡틴 바리스타가 돼야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만두지 못한다. '더그'는 양로원에서 매일 노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고된 직업이다.
가시밭길 같은 현실에 굴하지 않고 꿈을 향해 도전하는 두 청년의 모습은 나쁜 수도사의 방해 속에서도 인쇄기를 발명하려는 '구텐버그'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병치된다. 이는 캐릭터와 배우 사이에 '도전'과 '꿈'이라는 묘한 동질감을 만들어 극을 더욱 튼실하게 엮는다.
작품은 '꿈꾸는 자는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다시금 관객에게 확인시켜준다. '버드'와 '더그'는 땀과 꿈으로 짠 질긴 '공감'을 몸으로, 대사로, 눈으로 객석을 향해 던진다. 절실하다 못해 절박해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억지 공감을 유도하진 않는다. 구차하지도 않다. 객석은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에 감동하고, 그들의 꿈에 기꺼이 동참하고, 타당한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