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민주화 혁명의 시작.독재에 견디다 못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김산슬
내게는 그 이별이 그리도 힘들고 회복이 더디었다. 예상하지 못했고 준비하지 못했던 이집트와의 이별에 나는 한국에서도 내내 열병을 앓았다. 그리고 2년 뒤, 요르단으로 유학을 떠나며 내 머릿속에는 방학 때 다시 갈 이집트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비행기냐, 페리냐, 육로 이동이냐, 그것이 문제로다!그리고 2012년 12월 29일. 나는 이집트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요르단의 홍해에 위치한 도시 아까바로 향했다. 사실 이집트까지 가는 방법으로 페리를 선택하기 전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시간 소모와 체력 낭비를 줄일 수 있지만 돈이 많이 드는 항공, 물론 가장 편한 방법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장소에서 마주치는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기에는 너무나 짧고 현대적인 여정이었다.
두 번째 대안이었던 육로는 국경까지 가는 방법도, 교통 편도 너무도 어렵고 위험했다. 게다가 육로로 국경을 건너다 강도나 소매치기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해서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마지막 방법이었던 두 나라의 항구가 있는 홍해를 통해서 가는 방법. 편도 항공료로 왕복 페리 티켓을 끊을 수 있는 정도의 가격이었고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요르단의 항구도시 아까바로 바로 가는 버스도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현지인들의 주된 이동 수단'이라는 사실이었다. 가는 동안 요르단과 홍해와 이집트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며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아랍인들과 함께 부대낄 터였다. 물론 조금 더 고되고 긴 여정이 될 것임을 알았지만 우리는 이동하는 그 하루의 시간 또한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내가 만약 혼자서 이집트를 갔다면 나는 비행기를 탔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셋이었다. 내 옆에는 이보가 있었고 나흘라가 있었다. 체코에서 온 이보와 대만친구 나흘라. 요르단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 우리는 서로 죽이 잘 맞았고 그들과 함께라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나일강 유람선보다 열악한 호화(?)페리... 우리 속은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