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혁
전혀 의도하지 않은 출발이었다. 두 아들을 키우는 아비로서 언젠가는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그리고 너무 쉽게 닥쳐올 거라곤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나의 캠핑 체험은 무방비 상태인 추석 연휴 때 그렇게 찾아왔다.
"다 준비해 놨으니, 몸만 오게…. 이서방."캠핑 중의 최고는 단연 입만 달고 가는 캠핑이리라. 캠핑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곁눈질하기 시작하던 나에게, 이 얼마나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제안인가?
몇 년 전부터 차근차근 캠핑용품을 모으기 시작한 처형의 남편인 형님께서 이번 추석 연휴가 뒤로 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족 캠핑을 추진하였다. 캠핑 경험이 두 번째인 형님의 인솔 하에, 세간살이 절반에 가까운 캠핑용 장비를 싣고 오토캠핑장으로 향했다.
약간의 설렘으로 시작한 오토캠핑서울 근교의 이름 있는 오토캠핑장 경우는 이미 한 달 전에 예약이 끝났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가 선택한 목적지는 경기도 양주시 일영 유원지에 있는 선착순 오토캠핑장이었다. 캠핑 장비를 싣고 떠나는 발걸음은 누구보다 가벼웠으며, 고등학교 수련회 이후로는 야외취침 기억이 별로 없었으므로 약간의 설렘도 있었다. 거기다 이제 뛰어다니기 시작한 두 아들 녀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바람직한 아버지가 된 것 같은 뿌듯함까지 더해졌다.
오토캠핑.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여행 중에 야영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땅덩어리가 드넓은 북미나 유럽 등지에서 캠핑카나 트레일러를 이용한 자동차 캠핑을 뜻하는 용어였으나 이웃 나라 일본의 세미오토캠핑(캠핑 장비를 차에 싣고 가서 하는 야영)의 개념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불과 5년여 만에 캠핑 인구가 50만에서 300만(혹은 500만 명까지도 추산)으로 늘어났고, 캠핑 장비 시장 규모도 4조 원대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산과 들에 캠퍼들이 넘쳐나는 바야흐로 캠핑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물론 오토캠핑이니 알파인 캠핑이니 백팩 캠핑이니 따위의 분류들에 대해서는 후에 공부해서 알게 된 분류고, 나 같은 생초보들에게 캠핑은 그저 야외에 텐트치고 고기 구워 먹는 여가의 활용, 딱 거기까지였다.
한 시간 남짓 차로 달려 목적지에 드디어 도착. 그런데 이건 내 머릿속 캠핑장의 모습이 아니다. 자그마한 운동장 주변으로 나무 그늘이 좀 있고, 그 아래 대강 그어둔 구획 표시가 보이고, 선과 선 사이의 지형은 주변보다 약간 편평할 흙일 뿐이었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잔디밭 위로 나비가 날고, 그 뒤를 쫓는 두 아이의 모습은 연기처럼 사라져 갔고, 그 환영을 애써 지우며, 묵묵히 '타프'라는 이름의 거대 천막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초보 아니 최초 캠핑 경험자에게 있어서 타프 아래, 모기장집(타프 스크린) 그리고 텐트까지 3개를 설치하는 과정은 그냥, 집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론은 해박하지만, 실제 캠핑 경험은 두 번째인 형님과 땀을 뻘뻘 흘려가며 세 시간 가까이 실랑이를 벌이고 나서야 겨우 두 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다 짓고 나니 나도 전문 캠퍼가 된 것 같은 기분이고, 아이들은 동굴집이 생겼다며 즐거워했다. 거기다 저녁때 고기 구워 먹을 생각까지 하고 나니… 처음 느낀 실망감이 점차 수그러들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열악한 화장실과 수도 시설 등은 아내와의 배드민턴, 아이들과 곤충채집 흉내 같은 아름다운 기억들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잊혀졌다.
그에 따라 캠핑에 대한 호기심이 호감으로 차츰 바뀌어 가고 있었다. 야외에서 진행된 저녁 만찬. 그릴 위에서 참숯에 익어가는 삼겹살의 향연은 그 자체가 캠핑에 대한 환상과 중독의 주범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