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대표인 김준한 신부가 9월 11일 밀양시 단장면사무소 앞에서 정홍원 국무총리한테 전달하기 위한 '호소문'이 든 봉투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윤성효
정부와 한국전력은 추석 이후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 의사를 밝혔다. 한국전력은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 시점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는데, 오는 23일 아니면 10월 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밀양 주민들은 추석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김준한 신부는 "진정으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의지가 아니라 창의적인 패러다임 개발이 우선돼야 한다"며 정부와 한국전력이 밀양 송전탑 문제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음은 김준한 신부와 지난 17일에 나눈 대화다.
- 신부님께서는 처음에는 어떤 계기로 송전탑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요."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밀양에 발령받아 와 있는데, 이전 관변단체 출신 대책위 관계자의 간절한 부탁을 받고, 송전탑 문제에 결합하게 됐지요. 그게 계기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네요. 그때는 그렇게 애타게 결합해 달라고 요청하던 이들은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어요. 지금은 오직 경과지 주민들만 남은 셈인데, 그때 결합해 달라고 부탁하던 목소리의 진정성이 문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 밀양 주민들은 지난 8년간 싸워왔는데, 싸움이 길어지고 있는 원인은 무엇이라 보는지요?"이 문제는 끝없는 평행선을 걸을 문제가 아닙니다.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며 종합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건너가야 할 이 이즈음에 한국전력과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가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어 평행선입니다. 싸움의 과정을 잘 들여다보면 지금껏 한국전력과 산업부는 어떤 대안도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생태적 감수성"-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 공사에 있어 다른 지역인 부산 기장·양산·청도 등지와 달리 밀양이 유독 반대가 심한 것은 왜 그렇다고 보는지요?"가장 중요한 이유는 생태적 감수성입니다. 땅과 마을의 가치에 대한 이해방식이 다릅니다. 그리고 아직도 굳건한 농촌문화입니다. 파편화된 도시문화와 달리 품앗이 등 공동체적 문화가 살아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당 주민과 시민단체의 건강한 결합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 지난 9월 11일 정홍원 국무총리와 면담이 결렬되고 말았는데, 당시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시고 면담이 중단된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요."저희들은 최소한 이번 국무총리의 방문이 '보상안 발표'와 '태양광 밸리사업 MOU 체결'(한국전력에서 하는 송전탑 지원 사업의 하나)과 연결되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정말 밀양 송전탑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순수하게 찬성과 반대 측 주민, 행정기관 등을 두루 방문하고 의견을 청취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지금껏 진행되던 갈등을 총리의 방문으로 완결 지으려고 반대 측 주민을 들러리 세우듯이 형식적인 면담을 한다면 거절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방문 전날 밤 전격적으로 총리의 방문이 보상안 발표와 관련되지 않았고 그 발표는 유보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면담 석상에서 약속 이행 여부에 대한 질문에 가타부타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반대 측 주민과의 대화라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기만적인 태도이기에 면담은 결렬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일부에서는 산업부 장관에 이어 국무총리까지 밀양을 방문한 것은 그만큼 정부가 밀양 송전탑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의지는 내용으로 증명돼야 합니다. 어떠한 대안도 없이 옛날부터 해오던 보상안을 금액만 조금 더 증액시켜서 밀어붙이는 것은 불성실한 태도입니다. 수백 명의 박사와 전문가가 포진해 있는 한국전력과 산업부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안을 성실하고 공개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보상만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은 직무유기 내지는 무능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의지가 아니라 창의적인 패러다임 개발이 우선돼야 합니다."
- 대책위에서는 765kV 송전탑이 이미 들어선 지역을 답사했는데, 그 결과를 밀양과 비교할 때 앞으로 어떤 피해가 있을 것이라 보십니까."이미 예상되는 암 발생과 소음피해 등의 건강권 피해, 지가 하락 등의 재산권 피해가 가장 크게 대두됩니다. 그리고 공사강행 와중에 발생할 인권침해는 끊임없이 반복되리라 예상합니다. 이번 답사에서 확인한 것 중 중요한 것은 한전은 똑같은 매뉴얼로 한 번도 변함이 없이 밀어붙이기식 공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 최근 송전선로 주변지역에 대한 보상안 합의(가구당 400만 원꼴)가 나왔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주민들의 첫 번째 반응은 오히려 자신들이 가구별로 400만 원씩 거둬 줄 테니까 그것 받고 한국전력은 물러가라는 겁니다. 8년을 싸워온 주민들을 대상으로 400만 원을 보상안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주민들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더더구나 보상이 필요 없다는 사람에게 결국은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언론에 호도하기 위한 기만적인 태도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이런 위법적인 제안을 누가 했는지 대단히 궁금합니다."
- 밀양 일부 시민들은 정부가 '나노산업'과 '국도25호선 확포장사업' 추진을 약속했다며 송전탑 건설을 받아들이자는 분위기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우리나라 정치역사에서 가장 슬픈 것 중에는 좀 힘이 있는 지역구 국회의원이 자기 지역구에 국가 예산을 비논리적으로 가져다 쓰는 것이었습니다. 나노산업은 그런 면에서 필요하다면 우리나라의 거시적인 경제구조와 밀양의 조건을 고려해 최선을 다해 유치하도록 힘쓰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협상의 카드로 쓰는 것은 대단히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국도 확포장사업은 당연히 국가가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송전탑 문제와 연관시키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를 무기화하는 것입니다."
"한번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오지 않았습니다"- 송전탑 공사는 국책사업이기에, 반대할 수 없지 않느냐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저희는 한 번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국전력은 공기업이면서도 사기업보다도 더 한 마인드 속에서 오로지 한국전력의 입장에서 송전선로를 설계하고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국책사업이라는 측면에서 그들이 고민하고 국민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진정한 국책사업이라고 한다면 이와 같은 노선 선정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전력은 하나의 전기사업자로서 국책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사기업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무리하게 공사강행을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