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자회담 마친 박근혜-황우여-김한길박근혜 대통령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지난 16일 오후 국회 사랑재에서 3자회담을 마친 뒤 나란히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이희훈
"3자 회담의 유일한 성과는 박근혜 대통령의 민낯을 본 것이다."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 3자 회담을 지켜본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이다. 그동안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뒤에 가려져 있던 박 대통령의 본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날 회담의 최대 의제는 지난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 배후설이었다. 사실 두 사건은 별개가 아니다. 민주당은 채동욱 총장 사퇴를 두고 "청와대가 각본과 주연을 담당하고, 황교안 장관이 조연을 담당한 '국정원 사건 덮기와 무죄 만들기' 프로젝트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퇴를 해야 할 사람은 채 총장이 아니라 황교안 법무부 장관·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홍경식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이야기다.
무협지 같은 얘기?... 원세훈 공판 검사 "검찰수사 외압·검찰총장 음해 의혹"청와대와 새누리당에서는 당장 청와대 외압설에 대해 "무협지 같은 얘기"라고 부인하고 나섰다. 그러나 무협지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졌을 것으로 보이는 여러 정황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의 공판을 맡은 L검사가 지난 15일 검찰 내부 게시판에 올린 '검찰수사 외압 및 검찰총장 음해 의혹'이 대표적이다.
L검사는 이 글에서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일부 검사에게 <조선일보> 보도 예정 사실을 알렸고, 그 무렵 일부 검사에게는 총장이 곧 그만 둘 것이니 동요치 말라는 입장을 전달하였다"고 적었다. 지난 6일 <조선일보>에서 채동욱 총장의 '혼외아들설'을 처음 보도하기 전에, 이미 청와대 이중희 민정비서관이 검사들에게 <조선일보> 보도 예정 사실을 알렸다는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채 총장이 곧 그만둔다고 예고했다는 대목이다.
특히 L검사는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과정에 있었던 청와대 외압사실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당시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수사지휘라인에 있는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공직선거법 적용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검찰 수사에 직접 개입했다는 의혹이 공식적으로 제기된 것이다.
L검사의 증언은 채동욱 총장의 사퇴와 <조선일보> 취재과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는 청와대의 해명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L검사는 자신이 거론한 의혹들에 대해 "법에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수사 외압이 직권남용 등으로 처벌받은 전례가 있고, 위법한 방법을 통한 음해 정보 취득 및 사용 등 역시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3자 회담이 있기 직전인 16일 오전에는 곽상도 전 민정수석을 비롯한 청와대 인사가 채동욱 총장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터져 나왔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채 총장 혼외자식 존재 여부 논란을 넘어, 검찰총장에 대한 청와대 사찰 게이트로 사태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
박지원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이전부터 곽상도 전 민정수석과 국정원 2차장이 채동욱 검찰총장을 사찰했다"며 "(지난 8월 5일) 해임 당한 곽상도 전 수석은 이중희 청와대 민정비서관에게 '채동욱 사찰 자료'를 넘겼고 8월 한 달 간 채동욱 검찰총장을 사찰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최소한 우리나라 최고 사정기관의 독립성을 그 어느 때보다 강조해온 박근혜 정부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신상털이를 통한 사찰을 해 몰아낸다면 검찰이 제대로 서겠느냐"면서 "다른 총장이 와도 권력 눈치를 보기 때문에 검찰 독립과 개혁은 물 건너간 것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이날 3자 회담에서 김한길 대표가 채 총장의 감찰을 지시한 황교안 장관의 해임을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의 감찰권 행사는 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고, 진실을 밝히는 차원에서 잘한 것"이라며 오히려 황 장관을 두둔했다. "사정기관 총수인 검찰총장은 사생활·도덕성과 관련한 의혹이 제기되면 스스로 해명하고 진실을 밝힐 책임이 있다"고도 했다.
황교안 장관이 채 총장에 대해 감찰권을 행사한 사실만을 부각시켰을 뿐, 감찰을 지시할 때까지 청와대에서 진행된 사찰 의혹에 대해서는 전부 외면한 것이다.
1년 전 박 대통령 "불법사찰은 잘못되고 더러운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