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만원 필요없다" 밀양 송전탑 협상타결? 열받는다

상동반시의 고장, 고정마을에서 만난 두 이장... "감나무 마을, 이제 어쩌나"

등록 2013.09.16 13:26수정 2013.09.1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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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동기인 두 이장님 (왼쪽 서보흡, 오른편 천병재)
초등학교 동기인 두 이장님 (왼쪽 서보흡, 오른편 천병재) 이응인

15일. 경남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 고답마을 회관에서 서로 이웃해 있는 두 마을, 고답마을 천병재(73) 이장, 고정마을 서보흡(73) 이장을 만났다.

상동면 고정리 인근은 밀양의 '상동반시'로 유명하다. 상동반시는 씨가 없고 육질이 부드럽고 당도가 높아 인기가 있다. 강 건너편 청도반시가 상표로 뜨면서 유명해졌으나, 상동반시가 값을 더 쳐준다며, 고답마을 천병재 이장님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침에 아마 100상자 정도 나갔을 거요. 상동반시가 청도반시보다 더 비싸게 나가요. 원래 여기가 원조여. 연간 5억 정도 나오니 마을 사람들 수입원이 반시지."

상동면 소재지에서 동창천을 따라 오른편으로 꺾어들어 고정리로 들어서면 찻길에도 감나무요, 마을도 감나무 숲에 가려져 있고, 마을 회관도 감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고답마을 뒤로는 서북으로 뻗어 내린 낙화산 자락이 넉넉한 언덕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언덕 아래에 집들이 자리 잡고 생계의 터전인 감나무 밭이 숲을 이루고 있다.

"총리는 반대하는 주민 이야기 왜 안 듣나?"

가을 기운을 받아 발그레하게 익어가는 감을 출하하기 시작하는 때인데도 마을 사람들은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피해가 있는 지역에 와 가지고 이야기를 들어봐야지. 피해 없는 지역에 들여다보고 협조해 달라 하고 돌아가는 거는 서울 지하철역에서 물어 보는 거나 마찬가지지. 다음부터는 총리나 장관이나 여기까지 내려올 것 없이 서울 지하철역에서 물어보라고 해."


지난 11일 송전탑 문제로 밀양을 방문했던 정홍원 총리가 주민들의 고충을 들어주지 않고 간 데 대한 섭섭함을 고정마을 서보흡 이장님은 이렇게 쏟아냈다.

"가구당 400만원 준다니까 할매들이 악이 받쳐 있어요. 돈 400만원 그거 받으려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총리가 내려왔으면 반대하는 주민들 이야기도 들어보고 해법을 찾아야 할 것 아닙니까? 무턱대고 안 된다 하면 주민들이 뭐라 하겠습니까? 이래 놓고 다시 공사를 한다면 사고 나는 거는 틀림없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천 이장님이 말을 받았다. 마을 할머니들은 돈 400만원 안 받고 줄 테니 송전탑을 가져가라고, 송전선을 자기들(정홍원 총리) 지붕 위에 올리라며 난리가 났단다.

 감나무 밭에 싸인 고답마을.
감나무 밭에 싸인 고답마을.이응인

송전선은 고답마을 뒤 감나무 밭 언덕을 가르며 지나가서 고정마을 2반과 3반 사이를 가로막는다. 이제 고답마을 주민들은 생계의 터전인 감나무 밭을 잃게 되었다.

산 250번지, 114번 철탑 자리 바로 아래쪽에는 지금도 염소를 키우는 집이 있다. 115번 철탑은 마을 경작기 한가운데를 지난다. 송전탑 옆에 붙은 밭 주인은 한쪽 다리까지 불편한 몸으로 어렵게 땅을 일구었다며 이장님은 말을 잇지 못한다. 115번 철탑 자리에서 50미터 남짓한 곳에도 민가가 있다. 말하자면 끝이 없단다.

"철탑이 여기를 지나가면 우리는 건강과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잃습니다. 다 날아갑니다. 여기서는 못 삽니다. 다른 데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첫째 주민설명회 때부터 제대로 안 됐어요. 두 번째로 경북 청도군 쪽으로 가야 될 선로가 아래로 내려와서 뺑 둘러가요. 처음에는 경북 청도 쪽으로 노선을 잡았다고 해요. 청도군을 지나 직선으로 북경남변전소까지 가면 송전탑이 11개가 줄고, 마을은 피해가 거의 없어요. 진정한 국책사업 같으면 철탑이 11개나 적게 드는 쪽으로 가야지요. 우리하고 똑같은 피해가 나는데 저쪽으로 가라고 하면 말이 안 되지요. 피해도 적고 비용도 줄일 수 있는 노선이 있는데 왜 여기로 가야 됩니까?"

노선을 바꾸어 송전탑 11개를 줄이면 330억이 절약되는데, 그 돈으로 소수의 피해 주민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 주는 게 합리적이라고 서 이장님은 강조한다. 2반과 3반 사이로 송전선이 지나가는 고정마을을 살펴보려고 일어서는데, 마을회관 현관에 라면상자 두 개가 포개져 있고, 술 한 병이 세워져 있다.

"경찰서장이 주고 갔는데, 할매들이 안 먹는다고 저래 처박아 놨습니다."

골안마을은 고속도로와 송전선에 갇혀

 골안마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감나무.
골안마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감나무. 이응인

고정마을 3반은 골짜기 안쪽에 있다고 해서 골안마을이라 부른다. 왼편으로는 고답마을과 이어지는 감나무 밭 언덕이 펼쳐지고, 오른편에는 나지막한 산이 가리고 있다. 마을은 그 안에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아담하고 고요한 시골마을이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는 순간, '고요한' 마을은 깨어졌다. 어디선가 "쌕-", "쉬-익"하는 소리가 끝없이 들려온다. 사진을 찍기 위에 오른편 산자락에 오른 다음에서 답을 찾았다. 고속도로가 마을 오른편을 지나 산 밑으로 뻗어 있었다.

집집마다 감나무에 감이 오종종 매달려 있다. 골목에는 익어 떨어진 주황빛 홍시가 속이 다 보일 듯 맑다. 어떤 집에는 감을 담아 파는 종이상자가 쌓여 있고, 어떤 집에는 플라스틱 박스가 층층이 쌓여 있다. 골목에서 주민 한 분을 만났다.

"상동반시가 유명하다면서요?"
"청도반시보다 우리가 원조지요."
"고속도로 땜에 잠도 못 자고 시끄러워 죽겠는데. 송전탑까지 요 앞산에 들어선다니 어떻게 살아요? 막아야지요."

마을 뒤는 해발 579미터의 낙화산, 한쪽은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마을 앞은 765kV 고압 송전선, 산동반시의 마을, 골안은 꼼짝없이 갇혀 있다.

"이제 국민들은 다 알아요. 원전 고장이 나 가동 중단되었는데 밀양 때문에 전기 모자란다고 거짓말 하고, 김제남 의원이 밝혔듯이 신고리 3호기 내년 3월까지 상업운전 할 수도 없는데 가동한다고 거짓말 하고, 무슨 그런 경우가 있어요. 기존의 354kV 송전선에 증용량으로 가능하다는 것도 밝혀졌고, 신고리 3호기도 불량부품 들어가 문제가 됐잖아요."


서 이장님은 밀양에 765kV 송전선을 이렇게 무리하기 밀이붙이는 것은 전력난 때문이 아니라 아랍에미리트에 원전 수출 때문이라고 짚는다. 적어도 핵발전과 고압 송전선의 문제에 대해 이 정도 식견을 가진 사람을 주변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전은 처음에는 765kV 송전선이 개성공단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그 뒤에는 말을 바꾸어 서울과 수도권에 전기가 필요해서 765kV 송전탑을 세운다고 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서울까지 안 가고 북경남에 필요해서 세운다고 했단다. 북경남에는 전기가 남아도는 실정인데도 말이다.

 낙화산 아래 골안마을
낙화산 아래 골안마을이응인

"저는 집에 태양광 설치했어요. 이 싸움 때문에 한 거 아닙니다. 서울에도 집집마다 공장마다 태양광 설치하면 됩니다. 전기 절약 됩니다. 전기 모자라는 지역에 먼저 태양광 하면 됩니다." (천 이장)
"지금 대기업이 원가보다 싼 전기 쓰잖아요. 그 적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메우고요. 그 덕에 대기업이 돈을 더 버니, 정규직도 늘이고, 국민들을 위해 돈을 쓰고 해야 되는데. 비자금 조성해서 쓰고, 외국으로 빼돌리고 해서야 말이 됩니까?" (서 이장)

마을엔 환하게 웃는 감이 주렁주렁한데, 천 이장님 부인 김정자씨 말대로 마음은 편칠 않다.

"남편이 몸이 안 좋아 밥도 못 묵고 저런데, 마음이 불안해서 못살겠어."

집도 마을회관도 밭도 논도 감나무가 둘러싼 마을, 상동 반시의 고장 고정마을을 돌아나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밀양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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