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 생활이 길어지자 초조해졌다. 통장 잔액을 확인하기 겁났다.
김지현
다시 실업자 생활이 길어지자 초조해졌다. 줄어드는 통장 잔액을 확인하기가 겁났다. 맞벌이 수입에 맞춰 짰던 가계부에서 수입이 반토막 나니 그만큼 빚은 늘어났다. 결국 교통사고를 당한 엄마의 거동이 좀 자유로워지면서 또다시 취업 포털을 뒤지기 시작했다.
가능한 주5일제 일자리를 찾았다. 시간제도 좋았다. 월급이 적어도 상관없었다. 아이도 챙기고 가사도 돌볼 수 있는 여유로운 일을 원했다. 하지만, 몇 시간 만에 나의 나쁜 머리를 탓해야 했다. 이미 반년 전에 '세상은 아줌마에게 그런 일을 잘 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으면서 그 아줌마는 다시금 '뻘짓'을 하고 있었던 게다.
그렇다면 직종이라도 바꾸길 원했다. 늘 서비스 모니터링의 감시 아래 있는 판매직이 부담스러웠다. 몸은 힘들더라도 마음만큼은 편하게 일하고 싶었다. 이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전문 자격증이 없으니 갈 곳은 서빙 아니면 판매일뿐이었다. 서빙일은 대부분 근무시간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간혹 파트타임 일자리가 있었지만 수입이 너무 적었다. 한 달에 60~70만 원 벌기도 빠듯했다. 대형마트 진열일이라도 하고 싶었다. 업체에서는 무거운 상품을 계속 들고 날라야 하기 때문에 남성만 뽑는다는 이야기로 내 의지를 꺾어버렸다.
이력서 낼 만한 곳은 피하고 싶던 판매직뿐또다시 판매직인가? 그 길뿐이라면 이번에는 명품처럼 전혀 관심 없던 상품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팔고 싶었다. 음식은 못 만들어도 먹는 걸 좋아하니 식료품 매장이면 족하리라. 그런데 대형마트 식료품 판매직에 이력서를 내려면 보건증(건강진단결과서)이 있어야 했다. 보건소에서 발급해준다기에 보건소로 향했다. 가면서 조금 불안했다. 낮 12시가 다 돼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점심시간이라고 안 하는 거 아냐? 에이, 은행처럼 돌아가면서 점심 먹겠지.' 불안감을 잠재우며 발걸음을 빨리해 보건소에 도착했지만 '지금은 점심시간입니다'라는 접수 창구 앞 안내문이 날 반겼다. 휴대전화 시계를 보니 12시 1분이다.
처음엔 칼 같은 보건소 측의 점심시간이 야속했다. '조금만 늦게 닫으면 좋았잖아'라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김에 밥이나 먹자고 근처 식당을 찾고 나서는 내 편의만 생각하고 보건소 직원들의 소중한 식사 시간을 빼앗는 것에 대해 무감각했던 나를 반성했다.
한편, 점심시간이라고 공포하고 쉴 수 있는 보건소 직원들이 부럽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들쭉날쭉하고 그마저도 제대로 쉬기 힘든 서비스맨들에겐 꿈같은 이야기다. 백화점·마트·상점들도 점심시간에는 아예 문을 닫으면 좋을 텐데…. 그 일이 불가능한 건 사장들 때문일까, 소비자들 때문일까.
민망함을 무릅쓰고 보건증까지 탔지만
엉뚱한 상상을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낮 1시가 '땡' 하자마자 보건소에 들어섰다. 이미 접수 창구에 앉아있던 직원은 접수증을 내주며 2층 검사실로 가라고 한다. 검사실에 도착하니 직원이 면봉을 주면서 민망한 말을 건넨다.
"항문에 한 번 넣었다 빼서 갖고 오세요."'이건 도대체 뭘 확인하는 검사지?'라는 궁금증을 해결하지도 못한 채 머릿속으로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문다. '근데 항문에 얼마큼 넣어야 하는 거야? 툭 스치기만 해도 되나? 아니면 쑤~욱 집어넣어야 하나?' 아무런 설명도 없었던 검사실 직원을 못마땅해 하면서 화장실 안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고민한다고 나올 답도 아니니 면봉을 빼들어 '에잇, 모르겠다'고 체념한 채 '툭'과 '쑤~욱'의 중간쯤 깊이를 택했다.
내 고뇌의 시간은 쓸데없었다. 깊이는 상관없고 흔적만 묻으면 되는 거였나 보다. 검사실 직원은 면봉을 받아서 따지지도 않고 바로 봉지에 넣은 후 또다시 별 설명 없이 방사선실로 가라고만 이른다. 방사선실에서의 X-레이 촬영도 눈 깜짝할 새 이뤄졌다. 방사선실 기사는 양쪽 방을 번갈아가면서 X-레이를 찍는 신공을 발휘하고 있었다. 식당 등 요식업에서 일하려면 보건증이 필요하다는데 그쪽 업계에서 일하는 이들이 상당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보건소에 들어온 지 10분도 안 돼 모든 검사가 끝났다. 접수증을 꼼꼼히 보니 그새 나는 이질과 장티푸스·결핵 검사를 받은 것이었다. 다시 접수 창구로 가니 보건증은 일주일 후에나 나온다고 한다. 또다시 취업이 일주일 늦춰진다는 이야기라 우울했다. 일주일 후에 보건증이 위력을 발휘해 취직만 된다면, 일주일쯤은 기쁘게 기다리겠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 바람과 달리 보건증은 힘이 없었다. 보건증을 받자마자 몇 군데 식료품 매장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나를 찾는 곳은 없었다. 애가 탔다. 이제 식품 매장만 고집할 형편이 아니었다. 육아용품점·생활용품점 등 관심 영역을 넓혀 이력서를 마구 밀어 넣었다.
그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가구회사로 유명한 대기업의 생활용품점이었다. 비록 주말에도 근무를 해야 했지만, 출근시간도 늦고 근무시간도 짧아서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약속을 잡고 면접을 보러갔다. 대리점이어서 작은 점포일 줄 알았는데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었다. 번듯한 외관부터 마음을 사로잡았다. 점잖아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사장이라면서 나를 반겼다. 그는 면접에 앞서 손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매장을 안내했다. 매장에 대한 그의 애정이 느껴졌다.
면접 전 나는 이미 이곳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가 있었다. 사장은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이력사항에 대해 질문했다. 그 역시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질문 몇 개 만에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런데 면접 전과 달리 나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면접을 통해 확인한 채용공고와 다른 점들 때문이었다.
'아줌마한테 일자리가 흔한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