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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학교 1992년 소노마 카운티 한국학교에서 학생들이 직접 쓰고 그려 만든 문예지. 그 당시 부모님을 모시고 발표를 하는 학생과 나. ⓒ 강은경
▲ 한국학교 1992년 소노마 카운티 한국학교에서 학생들이 직접 쓰고 그려 만든 문예지. 그 당시 부모님을 모시고 발표를 하는 학생과 나.
ⓒ 강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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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 교회 아이들을 모아 시작했다. 물론 무료 수업이었다. 그런데 학생 수가 금세 불어났다. 곧 학부형을 중심으로 이사회가 조직됐다. 몇 달 지나자 장소를 옮겨야 했다. 학생이 백여 명으로 늘었다. 무용선생님, 음악선생님까지 자원교사도 열 명. <소노마 카운티 한국학교>가 정식으로 섰다. 교실은 미국학교 건물을 빌려 썼지만. 나는 그곳을 떠날 때까지 3년여 동안, 매주 일요일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십 수 년이 지나, 서울을 방문한 그때의 학생들을 몇 명 만났다. 모두 멋진 청년으로 컸다. 선생님, 선생님, 하며 내게 한국말로 재재거렸다. 기특했다. 기뻤다. 그러나 한편, 마음 아팠다.
정작 내 아이들에겐 한국어를 가르치지 못했다. 나는 한국어가 서툰 내 아이들과 속 깊은 절절한 얘기들을 나눌 수 없다. 일상 가벼운 대화야 영어로든 한국어로든 한다지만.
그 당시 남편이 끝끝내 생각을 고쳐먹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어는 반드시 배워야 한다, 내 부모는 내게서 영어를 배우려고 한국말을 못하게 했다. 원망스럽다...' 라고 말하는 교포2세 대학생도 만나게 해주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아이들의 한국어 교재와 한국어 동화책들을 몽땅 내다버렸다.
네이티브 스피커인 아이들은 '모국어'인 영어를 어느 때나 편하게 사용했다.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영어였다.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아이들은 아빠 따라 한국어와 멀어졌다. 내가 더 붙들고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했는데. 그때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고나서야 스스로 알게 된 것 같다. 지구촌 어디에서 살든 한글을 배워야 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좋은 시기를 놓쳤다는 것을. 막내딸 여름이는 삼년 전 여름방학을 이용해 서울에 왔었다. 연세대 어학당에 다녔다. 듣고 말하는데 간신히 초보수준은 벗어났다.
그런데 그때 여름이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엄마, 한국 사람들은 한국말 싫어해요?"
"왜?"
"이상한 영어를 정말 많이 써요. 한국말은 창피하고, 영어는 부러운 건가요? "
"아니."
아니라고, 내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왠지 새빨간 거짓말을 할 때처럼 속이 뜨거웠다. 'Hi Soul'이 뭐냐 묻던, 미국인 친구 제프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의 입 꼬리에 매달렸던 비웃음도.
'영어상용화정책' 논란이나 '영어몰입교육' 같은 한국의 속사정을, 여름이나 제프가 알았다면 뭐라 했을까. '세계화', '국가경쟁력' 따위의 이유를 대며, 내가 그 사회현상들을 두둔했다면 먹혔을까. 여름이에게 한국 사람은 한국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제프의 입꼬리에서는 비웃음을 거둬낼 수 있었을까. 아니다. 둘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을 것이다. '멍청한 짓이야!' 라며 펄쩍 뛰었을 것이다. 언어가 얼마만한 힘으로 사회와 문화와 인간의 정체성과 영혼에 작용하는지, 흥분한 목소리로 덧붙이며.
오늘은 서울에서 지인이 보내준 학용품을 할머니들에게 나눠주었다. 딸이 나눠 쓰라 보냈다며 김순달 할머니도 학용품을 한 보따리 풀어놓았다. 새 공책, 새 연필, 새 지우개를 받은 할머니들의 표정이 접시꽃마냥 환해졌다.
받아쓰기를 했다. 할머니들은 곁받침과 연음법칙 때문에 골머리 아파했다. 낫, 낮, 낯처럼 소리는 같지만 뜻이 다른 말들도 헷갈려 했다.
"오메, 참말로 복장 터지 것네! 다 틀렸네, 다 틀렸어!"
받아쓰기가 끝나자 김복순 할머니가 탄식했다.
"세종대왕님께서 글자를 너무 어렵게 맹기신 거 아녀?"
그럴 때 할머니에게 '한글은 동아시아 수천 년의 문자사 속에서 피어난 하나의 불가사의한 경이임을 깨닫게 된다'라며 한글을 언어학적으로 분석하며 극찬한, 노마 히데키의 <한글의 탄생>을 읽어보라고 권할 수도 없고.
"틀리닝께 배우러 오지, 한 개도 안 틀리면 뭣 땀시 오겄어? 배우는 게 시상 재밌구먼."
김순달 할머니가 웃어가며 받아쳤다.
"맞다, 맞다!" 할머니들이 복창했다.
"선상님, 목 아플틴디 술 좀 묵구 가요. 밥도 한 솥 있은 께 묵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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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과후 수업 끝나고 모여 앉아 먹는 밥. 된장국과 푸성귀 반찬 몇 가지로도 꿀맛 같은 밥상. ⓒ 강은경
▲ 방과후 수업 끝나고 모여 앉아 먹는 밥. 된장국과 푸성귀 반찬 몇 가지로도 꿀맛 같은 밥상.
ⓒ 강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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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고 나오려니 할머니들이 내 손을 붙잡았다. 나는 또 할머니들이 권하는 맥주 한 '고뿌'를 마셨다. 할머니들은 수업이 끝나면 자주 나를 붙들어 앉힌다. 내게 밥을 먹이고 술을 먹인다.
"참말로 사는 게 재미지구먼. 요리 모여 공부도 허구, 밥도 같이 묵구..."
김순달 할머니의 말대로, 사는 게 순간순간 참 재미지다.
이제 김복순 할머니와 딸에게 답장을 써야겠다. 고맙다고.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