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츨라프 광장1968년 '프라하의 봄'이 시작되었던 광장.
지금은 관광객만 넘치는 거리가 되었다.
홍광석
나치 독일에 끝까지 맞서 국가적 자존심을 지키려고 했던 폴란드는 수도 바르샤바는 물론 온 국토가 초토화됐다. 반면 22시간 만에 백기를 든 체코의 프라하는 지금 세계적인 관광지가 돼 관광객을 불러모아 경제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체코 인구는 약 1000만 명인데 찾아오는 관광객은 연간 70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나치 독일에 끝까지 맞서 국가적인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폴란드와 현실적인 항복의 길을 택한 체코는 현실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죽더라도 싸워 나라를 지키자는 명분론과 항복해 목숨을 구하자는 현실론의 대립은 많았다. 지금도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국가적인 정책 결정 시 명분론과 현실론의 갈등은 조금씩 있다고 본다. 사안에 따라 국민의 판단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국가의 존망이 걸린 자존심의 문제에서는 명분론이 우세할 것이다. 그런데 당시 체코 정부의 자존심을 굽혔던 치욕적인 선택이 현재는 전화위복의 사례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 국가적인 자존심을 지킨 폴란드의 결정을 우직하다고 봐야 할까. 당시 체코의 항복을 민족을 위한 결정이었다고 치켜세워야 할까. 프라하 거리를 헤매며 지금은 웃지 못할 해학적 역사의 아이러니가 된 물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폴란드와 헝가리 사람들은 물론 동유럽 사람들 사이에서 모욕적인 욕 중 하나가 바로 체코인에 빗대 비웃는 것이라고 한다. 2차 대전 당시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해버린 체코를 잊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혹시 아직도 골수 사대주의적인 정치가들과 국익보다 사복을 채우기에 능한 정치가들이 자신의 비겁과 무능과 파렴치함을 위장하는 수단으로 오늘 체코 프라하의 사례를 자신들의 정치적 처신에 악용하는 사태가 발생할까 싶어 걱정이다. 기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