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파서 먹었어요팽이의 맘마
국인남
긴 장마가 계속 되던 날, 아파트 숲길을 거닐다 보니 달팽이가 보였다. 여기저기서 달팽이들이 물을 만나 소풍을 나온 것 같다. 순간 어항 속 물고기가 생각났다. '저 고기들에게 새로운 친구를 소개해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곧바로 아담하고 사랑스럽게 생긴 달팽이 두 마리를 선택했다. 팽이에게 속삭였다.
"팽이야 너희 둘은 사랑스러워서 선택 받았다. 아주 평안한 집으로 갈 거야. 친구들도 많아. 앞으로 행복할거야."이렇게 속삭이며 팽이를 조심스럽게 데려왔다. 신나게 놀고 있는 물고기들에게 말했다.
"애들아, 새로운 친구 팽이야, 서로 잘 지내라!!" 어항 속에 넣어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작은 물고기 떼들이 집중적으로 달려들어 달팽이를 쪼기 시작했다. 달팽이는 몸을 웅크리고 껍질 속에 몸을 숨겼다. 그래도 여전히 물고기는 떼를 지어 먹잇감으로 알고 공격했다. 그냥 놓아두면 죽을 것 같아서 큰 돌 위에 올려 주었다. 돌 위에는 고기들이 올라오지 못하기에 안전지대였다.
잠시 후, 안심하고 달팽이를 그곳에 놓아두고 볼일을 보고 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들의 상황이 궁금해서 곧바로 어항 앞으로 다가 갔다. 그런데 난리가 났다. 물 속에 넣어둔 수초를 달팽이가 벌집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정성스럽게 만들어놓은 수초를 맛나게 먹어버렸다. 물고기를 피해 물위에 나와 있는 수초로 허기를 달랬나보다.
수초를 확인하느라 여기저기 살피다가 발아래 무언가 느껴졌다. 아뿔싸, 내 발밑에 무언가 밟혔다는 느낌이 왔다. 순간 '달팽이구나!' 느끼며 주저앉았다. 한 마리는 이미 밖으로 탈출한 상태였나 보다. 그 상황을 알지 못하고 일을 저지른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는 내 모습이 우스웠는지 남편이 한 마디 했다.
"달팽이 장례준비 할까?" 상처나는 산자와 죽은 자를 데리고 발견했던 장소로 다시 갔다. 산자는 그 자리에 다시 놓아주고 '잘 가라!'는 인사도 나누었다. 죽은 자는 손에 안고 풀숲으로 갔다. 미안한 마음에 달팽이를 땅에 묻어주고 싶었다. 내가 사건의 범인이었기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풀숲에 묻어주었다. 자꾸만 내 발에 밟힌 팽이의 원망 소리가 들렸다.
'나를 갖지 말고 그냥 바라만 봐주지!'어항 속을 재미있게 꾸며보려는 내 호기심에 한 생명이 죽었던 날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나는 그날 살생 자가 되었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미안하다 팽이야, 흙이 되어 다시 만나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많은 팽이들이 보였다. 탐내지 않았다. 사랑은 모든 만물들이 서 있는 곳, 바로 그 자리에 놓고 그냥 바라보는 것임을 뼛속 깊게 체험했다.
내 욕심에 달팽이 한 마리만 압사를 당했다 생각하니, 지금도 비 오는 날 달팽이만 보면 트라우마(trauma, 외상 후 스트레스장외)가 생긴다. 그러기에 상처도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많이 남는가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희망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길이 열린다.
좀 더 살기좋은 세상을 향해 가고있는 오마이뉴스와 함께
깨어있는 시민정신으로 희망의 길을 찾아 가리라.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