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동면 고답마을 마을회관
빈진향
"근원이 원자력 발전소에 있다. 원자력 발전소 아니면 밀양에 765니 뭐니 이럴 필요가 없다 아이가.""원자 힘을 이용해서 핵발전소를 만든다는 것은 전기는 흔하게 쓸지 모르지만 그것이 핵무기는 공격용이고 우리 이 핵은 산업용이다 뿐이지, 원자폭탄 터지나, 발전소가 터지나 똑같다." "부산에 핵 발전소 자꾸 지어서 얼매나 많습니꺼? 그것이 터졌다 하면 어데 갑니까? 우리 다 어데 갑니까?""우리나라에는 바보만 사나? 일본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터지는 것 보면서도 우리는 계속 짓겠다 하는 게 말이 되나? 핵 전기를 쓰지 말고 신재생 에너지, 다른 걸 써야지."상동면 고정마을에 이어 고답마을을 찾아갔더니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계셨다. 칠팔십대의 어르신들이 원자력 발전소의 폐해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때까지도 나는 시골의 할매, 할배들이 진지하게 원자력 발전소니, 신재생 에너지니 하는 이야기를 나눌 거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가 어디에 몇 개가 있고 그중에 어떤 것이 가동 중인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몰랐던 나는 어르신들로부터 여러 가지 사실을 배웠다.
그렇다, 원자력 발전소, 송전탑 행렬의 시작점, 송전탑의 근원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
2년 전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폭발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치과 치료를 받으러 다닐 때였는데 병원 대기실에서 아이들과 같이 일본의 지진, 쓰나미 피해 현장,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 폭발 장면을 보았다. 집에 TV가 없어서 인터넷 기사로 읽다가 커다란 벽걸이 화면으로 보니 생생하게 다가왔다. 아이들도 잔뜩 긴장해서 숨을 죽이고 봤다.
무슨 일인지 묻는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기 위해 검색을 하다가 당시 인터넷에 나돌던 '원자력 발전소가 어떤 것인지 알려 드리죠'라는 글을 발견했다. 글쓴이는 일본 사람 '히라이 노리오'. 원자력 발전소에서 배관 전문 현장감독으로 수십 년간 일했으며 후쿠시마 원전 건설에도 참여했었단다. 방사능이 위험하긴 하지만 사고만 아니면 괜찮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던 내게 이 글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원전은 사용연한이 지나도 폐로나 해체가 어려워 '폐쇄'를 하는데 '폐쇄'의 의미란 발전을 멈추고, 핵연료를 뽑아서 끝나는 게 아니라 발전할 때와 똑같이, 물을 주입하고 가동시켜 감시,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사능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핵폐기물, 반감기가 수만 년에 이르는, 그래서 아직까지 과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안정한 폐기 방안이 없으며, 일단 심해나 지하에 투기하고 매립하고 있는 핵폐기물을 생각하니 원전이 지금 어른들의 문제가 아니라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발전하지 않는(돈벌이도 되지 않는) '폐쇄'된 발전소를 누가 끝까지 책임지고 관리할 것인가? 수많은 핵폐기물을 수백 년, 수만 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 가능한가? 결국 그 위험을 누가 떠안게 되느냐는 말이다.
2년 전 일기에 나는 '원자력 발전은 지금을 살기 위해 아이들의 미래를 갉아먹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 당시 블로그에 메모해 두었던 히라이 노리오의 글을 옮겨 본다. 글 속 아이들의 외침이 마치 우리 애들이 하는 말처럼 느껴져 오싹했던 기억이 난다.
"제가 5년 전 쯤, 홋카이도에서 강연회를 하던 중에 '방사능 쓰레기는 50년, 300년 동안 감시가 이어진다'고 말했더니,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손을 들고 '질문이 있어요. 지금 폐기물을 50년, 300년 감시할 거라고 하셨지만, 지금의 어른들이 하실 건가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이후의 우리들 세대, 또 그 다음의 세대가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만, 저희는 싫어요'라고 외치듯 말했습니다. 이 아이에게 대답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있을까요. 게다가 50년, 300년이라 해도, 그 만큼만 시간이 지나면 된다는 식으로 들리겠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원전이 가동을 하는 한, 끝이 없는 영원한 50년, 300년인 것입니다.강연이 대강 끝나서, 제가 질문 없습니까라고 말하니, 중학교 2학년짜리 여자아이가 울면서 손을 들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밤 이 모임에 온 어른들은, 거짓말쟁이들이에요. 저는 그 얼굴을 보러 왔어요. 어떤 얼굴을 하고 왔는지 보려구요. (...) 저는 토마리 원전 바로 근처에 있는 쿄와쵸에 살면서, 24시간 피폭 당하고 있어요. 원자력 발전소 주변, 영국의 셀러필드(Sellafield ; 영국 지방도시의 작은 마을, 핵재처리 공장, 핵연료사이클공장이 집중되어 있음)에서 백혈병 아이들이 태어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지역 원전 종사자, 주변 주민의 체내 플루토늄량이 높고, 소아백혈병발생률은 다른 지방의 10배이다)은, 책을 읽어서 알고 있어요. 저도 여자예요. 적당한 나이가 되면 결혼도 하겠죠. 저, 아이를 낳아도 되는 건가요?'라며, 울면서 300명이나 되는 어른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대답해 주지 못했습니다. '원전이 그렇게 나쁜 것이라면, 지금이 아니라, 왜 처음 건설될 당시에 끝까지 반대하지 않았던 거죠. 더구나, 여기 와 있는 어른들은, 2호기까지 만들게 했잖아요. 가령 전기가 없어진대도, 저는 원전이 싫어요'라고 말했습니다."후쿠시마 참사, 가까운 이웃 나라에서 원자력의 피해를 겪었는데도(겪고 있는데도! 방사능이 땅과 몸에 얼마나 축적되었는지 알 길이 없으니 피해는 현재진행형이다. 게다가 방사능으로부터 우리도 자유롭지 못하다. 장을 볼 때마다 생선을 사는 게 얼마나 꺼려지는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어묵, 머리 좋아지게 한다고 강남엄마들이 선호한다던 고등어, 못 먹은지 오래 되었다) 우리가 여전히 원자력을 고집하는 것은 참 안타깝다. 원자력이 안전하지 않고 비용도 싸지 않으며(발전소 건설 및 폐쇄, 핵폐기물 관리를 생각하면 원전이 경제적이라고 하는 것이 참 어이없다) 미래 세대에 큰 재앙을 떠넘기게 되는 뻔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왜 원전을 계속 짓고 있는지.
어르신들 말씀처럼 위험한 핵발전소는 그만 짓고 신재생 에너지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발전소를 대규모로 짓고 값싼 전기를 공급하여 수요를 늘리고 그래서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하는 악순환을 이제는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뿐 아니라 전기의 절반 이상을 사용하는 기업들이 나서서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필요한 에너지는 스스로 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
대체에너지, 신재생에너지, 말처럼 낯선 것이 사실이지만, 처음이라 두려운 것이지 중요한 것은 의지라는 생각이 든다. 경제 대국이면서 17기의 원전을 보유한 나라 독일에서는 2022년까지 원전을 완전히 폐기하기로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 냈다고 한다. 인구 85만의 중소도시, 일본의 야마나시현은 태양광과 수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로 2050년까지 전력 100% 자급자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KBS <시사기획 창> - 전력공화국의 명암 참고) 자기 고장에서 전기를 만들어 자기 고장에서 사용하기, 그러면 굳이 송전탑을 세우느라 여러 사람 힘들게 하지 않으니 좋겠다.
변화에는 두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갑자기 지금 하던 방식을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야 한다. 왜냐면, 우리는 누군가의 엄마, 아빠, 삼촌, 이모니까.
"송전탑 들어서면 벌이 사라진다니 그것도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