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밭마을 전원생활
빈진향
한국전력(한전)이 밀양에 세우려고 하는 송전탑에는 세계 최고, 76만5000볼트 초고압 전류가 지나갈 예정이다. 높이만 해도 100m가 넘어, 40~50층 아파트와 맞먹는단다. 내 집 가까이에 이렇게 거대한 탑이 들어서면 보기만 해도 두렵고 답답한 마음이 들 것 같다.
그러나 그보다 무서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파, 이로 인한 건강상의 피해라고들 말한다. 내가 밀양에 도착한 그날(7월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의원(민주당)은 2009년 한전의 내부 보고서를 인용하여 76만5000볼트 송전선로 인근 80m 떨어진 곳에서 평균 3.7mG(밀리가우스, 전자파의 세기를 표시하는 단위)의 전자파에 노출되며, 이런 수치는 미국, 스웨덴 전문가들이 소아백혈병과 각종 암 발병률이 높아진다고 경고한 위험기준을 넘어선 것이라고 발표했다.
<경향신문>은 같은 날 한 기사에서 "장 의원은 '한국의 산업계에서 정한 833mG라는 전자파 노출기준은 스위스의 414배, 네덜란드의 108배, 이탈리아의 83배에 이르는 비정상적인 수준'이라며 한국도 선진국 수준으로 전자파 노출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사실 전자파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이렇게 전자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유해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한전 측에서는 이런 연구들이 '과학적 근거력'에 기반하는 위해성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체에 직접 실험을 할 수도 없고 역학 조사를 하더라도 전자파라는 단일 요소와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송전탑 인근의 주민이 암에 걸렸을 때, 이것이 전자파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자파에 대한 의구심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인체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기전을 밝히진 못했더라도(확증은 없지만), 전자파가 높은 지역에서 암 환자가 많다는 통계는 의미심장하다.
어르신들이 고압 송전시설의 피해에 대해 소상히 알게 되고 심각성을 느끼게 된 것은 고압 송전시설이 들어선 '경과지'를 답사하고 그곳에 사는 주민들과의 만남을 통해서다. 충청도 당진, 예산, 청양, 경기도 양주, 강원도 평창 등에는 이미 76만5000볼트와 같거나 낮은 전류의 고압 송전 시설이 가동 중인데 밀양의 '선배' 격인 이 지역 주민들의 '증언'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송전시설이 지어지고 나서 소음이 심해 밥맛도 잃고 잠을 잘 못 잔다는 이야기, 집에서 기르는 개나 축사의 동물들이 유산을 하고 기형을 낳았다는 이야기, 노환과 교통사고가 주요 사망원인이었던 장수 마을에 갑자기 암환자가 많아졌다는 이야기, 항공 방제를 할 수 없어 농사 피해가 크다는 이야기, 땅값이 시세의 30%로 떨어지고 매매가 어렵다는 이야기 등등. '선배' 지역의 현재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송전탑 건설 이후 밀양의 모습은 밝지 않다. 답사한 지역의 주민들은 멋모르고 고압 송전시설을 받아들인 걸 후회한다면서 밀양에는 절대로 세워지지 않게 하라고 당부를 하였단다.
"내가 강원도 평창 땅에 다녀왔거든예, 거기도 765(76만5000볼트 송전탑)가 섰는데 30만원 하던 땅이 5만 원에도 매매가 안 되는 기라."(위양리 권영길 이장님)당장 눈앞의 걱정은 농사 피해와 땅값의 하락에서 오는 재산상의 손실. 밀양에서도 이미 "땅을 사러 왔다가 저기에 철탑이 들어선다 하면 두말 않고 가 버려" 거래 자체가 안 된단다. 은행에서는 담보 가치가 없다고 대출도 해주지 않아서 "OO네 둘째 아들이 생전 처음으로 아부지한테 도와 달라 했는데 못 해줘서 부자(父子)가 며칠을 끌어안고 울었다더라"와 같은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었다.
송전탑 건설 공고가 난 지 올해로 9년째, 재산의 전부인 농토와 집의 가치가 '제로' 상태라서 자손들 학비와 결혼자금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