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인역사박물관에 전시된 한민족과 연합했다는 사진
이규봉
마치 폭죽 터트리는 소리와 같은 팽이 때리는 소리
박물관 건너편 호텔에서 묵었는데 바로 앞이 공원이었다. 대낮임에도 폭죽 터트리는 소리가 간간이 났다. '아니, 훤한 대낮에 웬 폭죽을 터트리나?' 나중 공원에 가보았더니 폭죽이 아니라 큰 팽이 돌리는 소리였다. 나이가 지긋이 든 남자 어른들 서넛이 각자 여기저기서 큰 팽이를 가죽 채찍으로 때리고 있는 소리였다. 한 번씩 팽이를 때릴 때마다 나는 그 소리가 마치 폭죽 터트리는 소리와 너무 닮았다.
팽이를 돌리는 것을 보니 어릴 때 기억이 난다. 우리가 돌렸던 그 팽이와 모습이 똑같았다. 단 그 크기가 스무 배는 더했다. 그래서인지 팽이를 때리는 채찍도 그만큼 컸다. 한 번 내려 칠 때마다 힘이 들어가니 운동 삼아 팽이를 돌리는 것 같았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는 주로 추운 겨울에 얼음 위에서 팽이를 돌렸다. 그런데 중국은 지금도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그것도 어른이 공원에서 운동하는 겸해서 팽이를 돌리고 있다. 아무도 시끄럽다고 시비 거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뿐 아니라 저녁이 되니 공원에 수백 명이 모여 군무를 추는 데 별로 틀리는 사람이 없이 잘 맞춘다. 하루 이틀 해본 솜씨가 아니다.
반일 연극을 순회공연하다난양을 떠난 지 사흘 만에 라오허커우에 도착한 장준하 일행은 이곳에서 25일간이나 생활하게 된다. 그들을 맞이해준 광복군은 그들이 기대했던 광복군 파견대가 아니라 조선민족혁명당 관련 광복군 제1지대 분견대 세 명뿐이었다.
라오허커우에 도착한 첫 날부터 사흘 내내 일본군 비행기가 시내를 폭격해 피해야 했다. 충칭으로 갈 날만 기다리며 할 일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는데, 광복군 분견대장은 충칭으로 가려는 장준하 일행을 도와주기는커녕 린취안 한광반의 김학규처럼 그들의 충칭 행을 만류했다. 그러나 이들의 설득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 충칭으로 가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문제는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파촉령이라 불리는 높은 산을 넘어 충칭으로 가는 데 필요한 노자와 식량이었다.
광복군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직접 중국군 이종인 부대와 접촉하려는 중에 이종인 부대에서 연락이 왔다. 이미 린취안 군관학교로부터 장준하 일행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이종인 부대에서는 이들의 반일 연극 공연을 장개석의 '15만 학도 종군운동'을 지원하는 정훈공작에 이용하고자 했다. 장준하 일행은 이 요청을 받아 들여 시내 15개의 중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순회공연을 했다. 공연은 대단히 환영 받았고 매우 성공적이었다. 여러 학교에서 성금을 많이 모아주었다.
학교를 돌아다니는 순회공연을 모두 마치자 이종인 부대에서는 시민을 위해 한 번만 더 공연을 부탁하였다. 할 수 없이 피로를 무릅쓰고 마지막으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시민회관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은 여러 관객들을 울릴 정도로 성공리에 끝냈다. 그러나 연출을 담당한 장준하는 과로로 쓰러지고 말았다. 인력거를 타고 여러 곳의 병원을 찾아 갔으나 의사가 없거나 치료를 모두 거부하는 바람에 스웨덴 사람이 경영하는 부민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다음 날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