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자정무렵 청문회 산회후, 국정원 관계자들의 비호를 받으며 국회 본관을 나서고 있다.
남소연
모자를 쓰고, 얼굴을 가린 채 동료 경찰들의 호위를 받던 고문경찰들의 모습은 이번 청문회 내내 가림막 뒤에서 모범답안을 읽던 국정원 직원들의 모습과 묘하게 닮았다. 청문회장에 나서고, 퇴장할 때 서류봉투로 얼굴을 가리고, 동료 국정원 직원들이 에워싸서 보호하던 그 모습 역시 이근안의 후예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치던 이근안은 10년을, 그것도 자기 집에서 숨어 살다가 1999년에야 자수를 한다. 이 때 그는 "그 때는 그것이 애국이었다" 그리고 "나는 철저히 '상명하복' 원칙을 지켰고 조직을 위해 십자가를 졌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청문회를 보면서 이근안 이외에 떠오른 또 한 명의 인물은 나치 독일의 장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Adolf Otto Eichmann, 1906~1962)이다. 그는 나치 친위대 중령으로 근무하며 유대인의 홀로코스트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까지 받았다. 그는 주로 유대인을 모아 관리하고 집단수용소로 보내는 일을 했으며, 유대인 박해의 결정권자라기보다 실무책임자였다.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전범으로 수배되자 지구 정반대편인 아르헨티나로 도피하여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짜 이름으로 15년 동안 기계공으로 살았다. 1960년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에 발각되어 체포돼 이스라엘로 송환된 후 재판을 받고 1962년 처형되었다.
그는 재판에서 "자신이 유대인 박해에 참여한 것은 상부 명령과 지시를 따른 것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변명했지만 사형을 피하지는 못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청문회를 보면서 아이히만이 떠오른 첫 번째 이유는 그가 했던 이 변명 때문이다.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기소하면서 국정원 댓글녀를 비롯하여 직접 일을 실행한 국정원 요원들과 경찰들을 기소유예 처분했다.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국정원과 경찰청이라는 조직 특성상 상관의 지시 명령을 거부하기 힘든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하는 일이 나쁜 일이라는 의식도 없었으며, 자신의 국가 독일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점 역시 국가 안보를 위해, 한점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국정원 요원들과 경찰들의 항변과 상당히 유사해 보인다.
맹목적 복종, 얼마나 위험한가이근안과 아이히만도 아마 부모에게는 착한 아들이고, 자식들에게는 좋은 아버지였을 것이다. 평범하기까지 한 이근안과 아이히만이 어떻게 죄 없는 민주인사와 학생들을 고문하고 유대인들을 집단학살한 악마가 되었을까?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르포 형식의 책에서 아이히만이라는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끔찍한 홀로코스트라는 거악의 주인공이 되는지를 추적했다.
아렌트는 악에 대한 의식이 없는 평범한 인간이 한 번 부당한 명령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이후에는 무비판적으로 그 명령을 계속 수행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달리 말하자면, 거악을 저지르는 인간은 도덕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와 권리를 억압하는 사회·정치적인 구조적인 악에 대한 사유가 없고, 그 악에 대한 저항의식이 없기 때문에 거악을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수행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