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카타의 거리
Dustin Burnett
하우라역에서 만난 불가촉천민하우라역에는 아침 8시 출근 시간 신림역은 농담으로 느껴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출렁이고 있었다. 길을 뚫어줄 칼리 사원의 사제 아저씨가 없는 관계로, 우리는 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흐름을 쫓아 열심히 걸었다. 인도에서 처음 타는 기차를 놓치기라도 할까, 우리는 서둘러 역에 도착했다. 기차 출발까지 아직 4시간이 남아 있었다. 역 중앙 의자에 자리를 잡자, 우리 옆에 앉은 젊은 인도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에서 왔어요?""어디로 가죠? 인도는 왜 왔어요?""직업은 뭐예요?"청년이 우리의 신상명세를 조회하고 있는 사이, 한 할머니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돈을 달라는 뜻이었다. 한참을 흥미롭게 우리를 관찰하던 젊은이는 대화를 방해받자 가볍게 손을 내저어 할머니를 물리쳤다.
청년은 자기가 탈 기차의 안내 방송이 나오자 이내 우리를 떠났다. 조금 전에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던 할머니는 역내를 한 바퀴 다 돌았는지 다시 우리가 있는 쪽으로 돌아왔다.
소란이 일어난 건 그때였다. 할머니는 우리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에게 뭐라고 힌두어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자기가 앉던 자리이니 나오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자리에 앉은 인도 아주머니는 바로 옆에서 자기에게 소리를 질러대는 할머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우두커니 앉아 다른 곳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자기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자 더욱 화가 난 할머니는 계속해서 소란을 피웠다. 주위 사람들의 입가에 비웃음이 감돌았다. 할머니가 소란을 멈추지 않자 여경 두 명이 다가왔다.
경찰이 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에 복받쳐 소리를 지르는 할머니는 잦아들 기미가 없었다. 경찰은 할머니에게 윽박을 질렀다. 할머니는 질세라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기를 몇 분. 오랜 실랑이 끝에도 잦아들지 않는 할머니의 소란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는지, 경찰은 최후의 수단을 동원했다. 그들은 들고 있던 채찍으로 할머니의 등을 살짝 내리쳤다.
"아아아!" 어설프게나마 유교 문화가 남아 있는 사회에서 자란 내 눈으로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아무리 비쩍 마르고 더럽고 가난하고 비루한 늙은 할머니라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공공장소에서 경찰이 사람을 채찍으로 때릴 수 있다니. 사람들의 동정표를 얻고자 함인지 힌두어로 포효를 내뱉은 할머니는 어설프게 죽은 척을 하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이제 좀 조용해졌다 싶었는지 경찰이 퇴장했다. 하루 종일 죽은 척을 하고 누워 있을 수는 없는지라, 할머니도 이내 멋쩍게 일어나 자리를 떴다. 비웃음을 담은 사람들의 눈길이 할머니를 좇았다.
언터처블. 저 할머니는 아마, 언터처블(untouchable)이라고도 불리는 불가촉천민이었을 거다. 중학교 사회 시간에 배운 기억이 난다. 인도라는 나라에는 카스트 제도가 있는데,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등의 계급이 있고, 제일 하위에도 속하지 못하는 무리가 이들, 불가촉천민이라고.
한국에서만 자란 내가 듣기엔, 카스트 제도라던가 불가촉천민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중국의 전족, 신라의 골품제도 같이 지금의 나와 전혀 상관없는 먼 옛날 먼 나라의 와닿지 않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인도에 오기 전의 인도는 그렇게,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곳이었다. 그랬던 그곳이, 나와 상관없던 이 세계가, 그들의 가난과 억울함이, 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간다.
할머니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내 사람들은 평정을 되찾았다. 채찍을 맞은 할머니는 할머니고, 우리는 우리의 가야 할 길이 있는 게 당연하다는 듯, 우리 역시 배낭을 가볍게 들어 올려 기차 안내 방송을 따라 플랫폼에 올랐다.
내가 만약 인도소녀라면 우리가 예약한 3등석 기차의 3인용 좌석에는, 6명의 승객이 옹기종기 붙어 앉아 있었다. 여행서는 기차에 오르자마자 좌석 아래 남는 공간에 배낭을 집어넣은 후 쇠사슬로 꽁꽁 묶어 잠가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었다.이놈의 여행서는 도대체 남의 사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저렇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리 사이를 뚫고 배낭을 어떻게 집어넣을 것이며, 사람들이 친절하게 자리를 비켜주고 있는 사이 '자리를 비켜준 건 고맙다만, 당신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소!'라고 소리라도 지르는 듯이, 배낭을 쇠사슬로 꽁꽁 묶어 열쇠로 잠그란 말인가. 어설픈 조언에 익숙한 우리는 이내 체념하고 사다리를 타고 윗좌석으로 올라가 배낭을 뉘였다. 아래 좌석에 앉아 있던 세 사람이 자리를 떴다. 아마 가족을 배웅하러 나왔던 모양이다.두 명의 여학생들 옆에 내가 앉고, 그 앞으로 더스틴이 내 무릎을 맞대고 앉았다. 인도의 기차 칸에도 입석이 있는지, 좌석 주위로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15시간 동안 기차에 서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불편한 마음을 꾹 참고 서 있는 사람들을 애써 외면했다.
"익스큐즈미 써?"머리를 야무지게 죄여맨 내 옆자리 여학생이 인도 카레처럼 톡 쏘는 인도식 영어 발음으로 말을 건넸다.
"혹시 메리랜드 대학이라고 알아요?"기차에서 같이 앉게 된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인도 소녀가 물은 건 이름도 아니고, 나이도 아닌, 미국에 있는 한 대학교의 평판이었다. 미국의 유수한 명문대에 대해 한국인인 나보다 더 무지한 더스틴은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여학생은 실망한 눈초리로 "저희 사촌 언니가 그 대학에 갔는데 하도 좋은 대학이라고 자랑을 하길래 물어봤어요"라고 대꾸했다. 친구인 두 소녀는 콜카타가 고향인데 바라나시에 있는 여자대학에 다니고 있으며, 방학이 끝나 학교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바라나시는 정말 답답해요. 저는 논베지(육식을 일컫는 말) 음식을 좋아한단 말이에요. 콜카타에서는 그런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는데, 바라나시는 종교적인 도시고 성스러운 곳이라서 베지테리안(채식) 음식밖에 없어요. 학교에서는 특히 더 그래요."옆에 있던 친구가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하아. 이제 자유도 다 끝이에요. 학교로 돌아가면 기숙사 생활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사감이 얼마나 엄한지 몰라요. 학교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려고 해도 일일이 보고를 하고 허락을 받아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