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리 명리동 마을야유회 모습.
조남희
"이거 양고기야. 한 점씩 일단 집어! 빨리! 자, 한잔씩들 해~ " '이게 뭐지? 양고기는 아닌 것 같은데?'
입속에 고기가 들어오자 드는 생각. 아차. 개고기구나. 그러고 보니 다음날이 말복이었다. 장난이 심하다고 말을 할까 하다가 정색을 하게 되면 싸움이 날 것 같았다. 시골마을이 그렇듯 제주도도 개고기를 먹는다. 대평리에 살던 때도 집집마다 개들이 자주 바뀌어서 개들한테 정주기가 꺼려질 정도였다.
개고기를 먹어보지 않았고, 먹고 싶지도 않은 여자1호 유라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더니 입안의 고기를 처리하고 평소 먹지도 못하는 소주로 입가심을 하고 왔다.
먹지 못하는 술을 아침부터 들이킨 덕에 이미 눈은 풀려있었고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라는 노래구절이 떠오르게 하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녀를 보고 개고기를 안겨준 아저씨는 "이거 동네 똥개야! 으하하하!" 하며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크게 웃어댔다.
'뉘집 똥개인지 안 됐구나...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여자1호의 표정을 보자 이대로 두었다간 야유회가 정말 엉망이 되는 상황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오마이갓 시민기자'는 속으로 외쳤다. 오마이갓.
"저희는 잠시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며 그녀를 부축해서 데리고 들어왔다. 화난 기색이 역력하다.
개고기를 먹는 것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개고기를 속여서 먹이는 것은 못할 짓이다. 그런데 속아서 개고기를 먹게 되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나 역시 어릴적 부모님이 사기를 쳐서(?) 처음 개고기 맛을 보았었다. 부모님이 데려갔던 식당에서 도마 위에 올라온 수육을 놓고 돼지고기라며 먹으라는 부모님덕에 한치 의심없이 덥석 개고기 맛을 보게 되었다. 맛나게 잘 먹었다. 집에 와서 엄마의 "그거 사실은 개고기였어… "라는 고백을 듣고나서도 이상하게 역겹다거나 구토가 몰려오거나 하진 않았다.
개고기를 사랑하시는 우리 아빠 덕분에 그 이후로도 종종 개고기를 먹곤 했다. 고3 때 '엄마 나 요즘 몸이 허한 것 같아'하고 말 한마디 했더니 아빠는 신이 나서 커다란 전골 냄비를 들고 경기도 어딘가로 가시더니 냄비 가득 보신탕을 담아 왔다. 아침마다 엄마가 챙겨주는 보신탕에 질려서 '이건 대체 누구를 위한 보신탕이란 말입니까'를 외친 이후 지금까지 개고기는 거의 먹지 않고 있었다. 서울집에서 개를 오래 키우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개고기 사건 때문에 마을 이야기를 더 듣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던 게 아쉽던 차에 야유회 날 마을 설명을 친절하게 해주셨던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제 한번 시간되실 때 마을 얘기 좀 더해주세요" 하고 헤어졌더니 반갑게도 곧 연락을 주신 것이다. 아저씨와 마을의 오리고기식당에서 만났다. 아저씨를 똑닮은 똘똘해보이는 중3 딸도 함께다.
개고기 얘기를 웃으며 다시 꺼내자 당사자를 대신해서 사과를 하신다. 웃다말고 아저씨의 딸에게 물었다.
"개고기 먹어봤니?" "네! 아빠한테 속아서 먹어봤어요!"거참. 딸들은 여전히 아빠한테 속아서 잘도 개고기를 먹는다. 신고식을 그렇게 어설프게 마친 게 아쉬워서라도 조만간 마을분들을 집으로 초대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고기는 준비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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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아서 개고기 먹은 여자1호... 싸움 날 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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