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티브하우스’ 직원들. 왼쪽부터 곽수경·박은지씨, 그리고 서동효 대표.
심혜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그에겐 제대로 된 아르바이트 자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답답함과 함께 분노도 생겼다.
"어차피 가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으니 그냥 과감하게 부딪쳐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고졸인 상태로 여기저기 입사지원서를 냈어요. 면접 기회가 주어지면 '저는 대학엔 가지 않았지만'으로 말을 시작했어요.(웃음) 그리고 제가 겪은 대로, 사회 비판을 막 했어요. 신기하게도 이게 먹히더라고요."그는 세 차례에 걸친 면접을 통과한 끝에 대기업이 운영하는 놀이공원에 정직원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쉽게 입사하니 쉽게 그만두게 되더라고요. 어느 정도 일을 배웠다 싶으면 다른 직장으로 옮기기를 몇 번 반복했어요. 뭘 해도 행복하지가 않은 거예요. 저한테 맞는 일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며 살고 싶지도 않았어요. 직장에 다녀도 불안은 끊이질 않았죠."서른인데도 여전히 불안 "나만이 아니었구나!"그는 자신의 고민을 주변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다. 20대 중반을 막 넘어선 친구들은 그의 고민에 공감했다.
"20대 중·후반이면, 대학도 졸업하고 군대도 다녀와 사회에 정착해야 할 시기라 생각하기 쉬운데 뜻밖에 많은 친구들이 저처럼 불안해 했어요. 직장생활을 해도 이게 뭔지 모르겠고, 만족도가 낮아 늘 이직을 생각하고, 대학에 계속 머물러 있거나 고시원에서 힘든 생활을 이어가거나 대부분이 그랬어요. 텔레비전에는 성공한 인생을 이야기하는 청년들이 나오지만 그건 정말 일부고, 대다수는 혼란 속에 방황하는 거죠."그는 이런 고민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2009년, 무작정 인터넷 카페에 '우리의 꿈과 고민을 모여서 이야기해보자'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 모임 공간을 제공하는 곳을 물색했다. 첫 모임부터 30명이 넘게 참석했다. 직장인이 가장 많았다. 돈·독서·인맥·시간관리 등 매달 다른 주제를 정해 이야기를 나눴다. 모임은 점점 활기를 띠었다.
"나 혼자만 뒤처지는 낙오자 같고 세상에 나갈 용기가 안 나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용기가 생겼어요. 또 일반적인 행복과는 조금 다르게 자기만 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서로 느낀 것 같아요."무엇보다 그는 모임을 주선하고 대화를 이끄는 일을 스스로 즐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1년 정도 모임을 하고 나자, 이걸 직업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임을 만들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을 던지는, 이런 일을 사업으로 해보자는 생각을 했죠."전문성 없는데, 과연 경쟁이 될까?모임을 함께 하던 몇몇 동료들과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서른이 넘어서도 갈 길을 못 찾고 헤매는 이유는 뭔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분석을 해보았다. 그는 십 대 진로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학교 진로교육이 너무 획일화돼 있어요. 흔히, 아이에게 '너 뭐 될래?'하고 물어보고 대답을 하면 '그게 되려면 이 고등학교에 가서, 이 과를 가야 되고, 그 과를 가려면 이 대학을 가야 하니까 수능은 몇 등급을 받아야 돼. 그래서 오늘 너는 영어단어 50개를 외워야 해' 이런 식으로 계획이 세워지잖아요. 이건 여러 면에서 문제가 있어요. 우선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한 고민이 없어요. 그리고 인생은 변화가 많은데, 십 대 때 인생 전체를 설계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요. 게다가 막상 그것을 이루고 난 뒤 '이게 아니다'란 생각이 들면 그땐 얼마나 막막하겠어요?"문제가 드러났으니 이를 해결하는 일만 남았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프로그램을 하나씩 완성해나갔다. 하지만 두려움이 뒤따랐다.
"현재 전문적인 적성검사프로그램이 많은데, 이것과 우리 프로그램이 과연 경쟁이 될지, 진로교육 전문 집단과 우리가 상대될지, 걱정됐어요."그는 주위 청소년들을 만나 진로교육시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아이들은 전문 집단이 하는 진로교육시간에도 특별한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관심 자체가 없다는 데 많이 놀랐어요. 그래서 어차피 우린 전문성이 없으니, 좀 재밌는 진로교육을 해보자고 결심했죠."외교관은 직업일 뿐, 꿈은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