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3일, 조성일 씨가 마지막으로 함께한 ‘꽃다지’ 콘서트 ‘혼자 울지 말고’
신동준, ‘희망의노래 꽃다지’ 제공
14년을 버티게 해준 노래, <희망>7~8개월을 그렇게 보내다가 1998년 겨울 콘서트 때 처음 무대에 섰다. 가사를 잊어버릴까봐 잔뜩 긴장하며 무대에 올랐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가수로 꽃다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바쁘게 보내던 중에 첫 번째 슬럼프가 왔다. 1999년 봄, 직접 꽃다지에서 생활하면서 밖에서 보던 것과 다르게 느껴지는 면이 있었고, 꽃다지 활동을 통해 만나는 운동권 현장의 모습과 사람 관계를 보면서 실망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이걸(꽃다지) 하는 게 맞나? 활동 하는 게 맞나?' 고민이 들었어요. 사람 관계에서 선배라는 이유로 내가 더 많이 활동해왔으니까 내가 더 잘 안다는 이유로 후배를 무시하거나 눌러버리는 힘의 관계를 보면서 실망스러웠죠." 그의 이러한 문제의식이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결국 꽃다지를 그만두려고 친구가 사는 옥탑방에 머물면서 일주일 동안 잠수를 탔다. 꽃다지를 정리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던 즈음, 조민제 매니저가 연락을 했다. 곡이 하나 들어왔는데, 그의 목소리와 맞을 것 같다고 했다. 꽃다지가 안치환 씨와 함께 공연을 하는데, 그때 무대에 올릴 노래라고 했다.
"와서 이 노래를 불러보고 공연 무대에 한번 서고, 서고 나서도 꽃다지 활동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때 그만둬도 좋다고 했어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 거죠. 무슨 노래인가 궁금하기도 해서 알겠다고 하고 가서 노래를 들어봤어요." 그 노래가 바로 <희망>이었다. 꽃다지 3집 <진주>(2000년)에 수록된 <희망>은 도종환 시인의 시에 이희진 씨가 곡을 붙인 노래로, 꽃다지 가수 조성일을 세상에 알린 노래다. 파워플한 남자 목소리가 꽃다지에서 대세였던 시기라 이 노래와 어울리는 가수는 조성일 뿐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그때 서로 헤어지고 말았을 텐데... 그 곡이 저한테는 의미가 있어요. 다시 꽃다지를 할 수 있게 해준 곡이기도 하고, 14년을 버티게 해준 곡이기도 하니까요. 계속 방황하고 힘들어할 때마다 내가 부른 노래를 내가 들으면서 다시 일어서야겠다 버텨야겠다 다짐을 많이 했어요. 무대에서도 그 노래 부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고요. 감사하게도 꽃다지 3집 음반 내고 사람들이 그 노래를 많이 좋아해줬어요. 노래가 좋다는 생각은 했는데, 생각보다 저한테 집중하는 모습들이 보이더라고요. 노래의 힘이 크긴 크구나 했어요."바닥 없는 방 벽에 못 하나 치고다시 꽃다지로 돌아왔지만, 그의 방황은 끝나지 않았다. 2002년, 그는 꽃다지 사무실 합주실 구석에 있는 지금은 창고로 쓰고 있는 '골방'에 들어간다. 꽃다지가 들어오기 이전 교회 기도실로 쓰던 방인데, 연습실 배정을 할 때 그가 가장 초라한 그 공간을 쓰겠다고 자원했다. 배려와 양보에서 했던 선택이었다. 천장이 낮아 서있을 때는 고개를 숙여야 하는 그 공간에서 조성일 씨는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한국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동전화국 점거농성에 관한 <점거>(글 오동일, 곡 조성일)와 호루라기를 불며 조합원들의 투쟁 참여를 독려하던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 이야기를 담은 <호각>(글‧곡 조성일)은 그 골방에서 만들어진 노래다.
"아침에 인사하고 골방에 들어가서 혼자 노래 하다가 가사를 썼어요. 아니면 멍 때리고 있거나... 그러다가 점심때 '밥 먹자' 하면 나와서 밥 먹고 물 한잔 먹고 또 다시 골방으로 쏙 들어가 있었어요. 그렇게 있다가 공연 있으면 가고, 다시 들어갔다가 일과 끝나면 가고. 그런 생활을 5년 가까이 한 거 같애요."내가 빌린 방엔 바닥이 없어내가 빌린 방엔 바닥이 없어나는 그 벽에 못하나 치고 치고나는 그 벽에 못하나 치고 - <못> "벽이 사방으로 있는데, 못이 박혀있어요. 거기에 제가 옷걸이처럼 벽에 딱 걸려있는 거에요. 근데 바닥이 없어요. 이게 내 상태다.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도 그런 거 아닌가. 비정규직도 내일이 없고, 꿈이 없잖아요. 내일이 없잖아요. 바닥이 없는 상태에서 못 하나에 매달려서 있는 거잖아요. 이게 공감이 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이번 앨범에 수록된 <못>은 10년 전인 그 당시에 만든 노래다. 그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건 다 못 하나에 매달려있는 상태인 것 같다고 했다. 2005년 초에 사무실 리모델링을 통해 연습용 부스가 추가로 만들어지면서 조성일 씨는 골방에서 탈출하게 된다.
치유할 수 없는 병과 사랑의 대상에 대한 그리움"널 골방에서 내가 꺼냈다.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정말 충격이었어.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공간이었어요. 옛날 창고처럼 온갖 물건 다 있고. 첫 인사 하는데, 사람들 컵라면 먹고 있고 얘는 구석방에 들어가 있고. 진짜 옛날 다방처럼 음침했어." 당시 그 리모델링을 제안했다는 정윤경 감독의 이야기다. 2004~5년에 합주를 할 수 있는 녹음실 부스를 만들고, 연습실은 수리하고, 장판도 새로 깔아 현재 '꽃다지' 공간 형태를 갖추었다. 이 부분에 대해 할 말 많은 정감독이지만, 조성일 씨에 대한 타박은 하지 않는다.
"하나는 제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병인 거 같은데요. 병. 치유할 수 없는 병. 바닥으로 툭 가라앉든가 공황상태가 되든가. 불규칙적으로 그게 막 올라와요. 그걸 잡아주고 조여 주고 해소시켜 주는 유일한 게 노래 부르는 거에요. 저를 조율 시켜주거든요. 그게 없으면 환장하겠는 거죠. 이 상태에서 제가 대처를 못하겠으니까. 다른 한 부분은 보이는 것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게 있어요. 그래서 저의 어떤 것들을 막 쏟아낼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을 만나고 싶고 그리워했던 게 계속 있는 거죠. 이건 음악으로 못 푸는 거에요. 그런 게 안되는 게 힘들고..." 오랜 세월 그 방에서 난 잠이 들었는지 몰라오랜 세월 그 방에서 난 꿈을 꿨는지도 몰라난 자유롭다 생각 하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믿고 있었는지 몰라하지만 그 방에서 난 나오기가 두려웠던 거야알고 있었지만 내겐 더 용기가 필요했던 거야- <그 방에서> 이번 앨범에 수록된 <그 방에서>는 변화를 위한 내용을 만들어 채우지 않고 합리화만 하는 세태를 자신의 이야기로 만든 노래다. 이 노래에서 '방'은 그 '골방'일수도 있고, 노래 <못>에 나오는 벽만 있고 바닥이 없는 방일 수도 있다. 또한, 그 방은 조성일 자신의 방일 수도 있고, 인간 전체에 관통하고 있는 방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은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방 한 칸 씩을 갖고 있잖아요. 그 방에서 나온 사람이 있을까요? 연정 씨는 그 방에서 나왔어요?"꽃다지, 내 몸에서 아픈 곳이자 나를 버티게 해주는 곳마침내 '골방'에서 나와 지난 3년 동안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니 '미쳤구나' 싶더란다. 나중에 민정연 대표, 하장호 전 매니저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너무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그렇게 했는데, 참 무던한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화를 냈을 텐데 지켜봐주고 골방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려준 게 되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켜봐주고, 내 스스로 내 힘으로 나올 수 있게 기다려준 거 같아서요."골방에서 나왔지만, 그것으로 방황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 이후에는 다른 방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에 들어갔던 방이 밖으로 나가면서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방향은 찾았지만, 여전히 그 안에는 갈등이 있었다. 후회와 자책이 밀려오고, 그런 자신을 보면서 주체가 안 되더란다. 무대 올라가는 게 무섭고 두렵고 부끄러웠다. 자신이 죽겠는데, 무대에 올라가서 힘내라고 얘기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방황은 그의 존재와 같은 것이기에 끝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골방을 나와 에너지가 소진되고, 헤매고 있는 상태에서 만난 그의 아내에게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게 늘 미안하다.
"사오년 방황했는데, 그 시간까지 내가 모하고 있었나? 그 시간동안 뭘 준비했으면 지금 꽃다지 안에서 뭔가 역할을 해낼 수 있었을 텐데..."꽃다지는 조성일 씨가 학교를 졸업하고 다닌 첫 직장이자 현재까지 마지막 직장으로 남아있다. 조성일 씨의 인생과 꽃다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는 꽃다지를 자신의 몸 중에 아픈 곳이라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