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왕가위
박숙희/뉴욕컬처비트
왕가위 감독이 돌아왔다.
유려한 영상, 갈망하는 인물들의 운명, 그리고 멜랑콜리한 분위기의 영화로 많은 관객들을 사로 잡아온 왕가위 감독이 무협영화 <그랜드마스터>(The Grandmaster, <일대종사>)'를 들고 왔다.
노라 존스와 주드 로를 캐스팅해 만든 첫 영어권 영화 <마이 블루베리 나잇>(My Blueberry Night, 2007)'으로 영화팬들을 적잖이 실망시킨 왕가위 감독이 이번에 내놓은 카드는 무협영화다.
<그랜드마스터>는 중국의 근대사를 배경으로 브루스 리(이소룡)을 배출한 영춘권의 대가 엽문의 삶을 그렸다. 1930년대 남방의 무술도시 불산에서 시작, 홍콩으로 망명해 무림 고수들 사이에서 지존을 지켜가는 엽문의 이야기다. 엽문 역은 양조위(Tony Leung), 고수의 딸 궁이 역은 장쯔이(Zhang Ziyi)가 맡았고, 한국 배우 송혜교가 엽문의 아내 장영성으로 등장한다.
<그랜드마스터>는 지난 1월 초 중국과 홍콩에서 개봉됐다. 중국에서 5000만 달러, 홍콩에선 270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리며,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됐다. 2월엔 베를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상영되기도 했다. 미국에선 오는 23일 개봉된다.
지난 11일(현지시각) 맨해튼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 시어터에서 미제작자협회(PGA), 영국영화아카데미협회(BAFTA) 등 영화인들을 대상으로 <그랜드마스터> 시사회가 열렸다. 시사회가 끝난 뒤엔 비평가 에이미 토빈의 사회로 왕가위 감독, 양조위, 장쯔이 인터뷰가 진행됐다.
장쯔이 "매일 그랜드마스터 세 분이 날 고문했다" - 1999년 후반 브루스 리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일대종사>가 되었나.왕가위 : "난 사실 무술영화와 쿵후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브루스 리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브루스 리의 팬이다. 난 브루스 리가 어디서 영감을 받았으며 어떻게 그만한 인기를 얻고, 어떻게 영화를 통해 쿵후를 전파하며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는가가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가 '위대한 투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모던하고, 무엇보다도 개화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중국 무술의 정수는 싸우는 방법인 동시에 철학이기도 하다. 그들은 항상 '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난 1998년 브루스 리에게 영향을 준 그랜드마스터 엽문의 가족을 만나 단편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다. 이 영화에서 70대의 그랜드마스터가 거실에서 젓가락처럼 서서 인체모형과 영춘권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영화 끝에서 엽문이 천천히 시범을 보이다가 잠시 몇 초간 중단한다. 여기서 나는 앵글을 발견했다. 난 항상 쿵후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색다른 쿵후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세상에 쿵후영화는 많다. 어떻게 새로운 쿵후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여기서 나의 앵글을 발견한 것이다. 대부분의 쿵후 영화는 복수와 누가 최고의 무인인가, 누가 이기고 지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난 여기서 깨달았다. 무인들에겐 유산을 전달하는 의무와 비전이 있으며, 유산을 전달하는 사명감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랜드마스터가 되려면, 기술이 있어야 하고 비전이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무술을 나누어주는 자비심과 의무감이 있어야 한다. 오랜 중국 무술 역사에 위대한 무사들은 있지만, 그랜드마스터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정한 그랜드마스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