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일' 숫자만 남기고... 철탑농성 마지막 날 풍경

현대차 비정규직 철탑농성, 8일 오후 1시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등록 2013.08.08 12:19수정 2013.08.08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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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일 철탑풍경 철탑농성장은 마무리를 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오른쪽에 현대차 공장이 보입니다.
295일 철탑풍경철탑농성장은 마무리를 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오른쪽에 현대차 공장이 보입니다.변창기

내일(8일) 농성을 마무리하고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오래 농성을 했고, 두 사람 모두 몸과 마음도 지쳤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함께 논의한 후 지회와 상의해서 결정했습니다. 저희들 건강은 아직 체력적으로 더 참을 수 있습니다. 여러 동지들이 우려하시는 것처럼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파(불법파견)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후 남아 있는 투쟁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힘이 남아 있을 때 내려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 조건과 지회 상황을 봤을 때 저희 결정이 부족하고 잘못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께 죄송합니다. 내일 내려가면 바로 경찰서로 출두할 겁니다. 형사문제를 빨리 마무리하고 동지들께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저희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의봉 최병승 올림.


7일 오후 출근하여 쉬는 시간 잠시 페이스북을 보는데 위와 같은 내용이 떠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게 뭔 일이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건강 악화로 내려오게 되었는지. 그래서 더이상 철탑농성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는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오후 5시 일 마치고 부랴부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고 있는 울산 현대차 공장 앞 철탑으로 향했습니다. 철탑에 가보니 지난번 방문할 때랑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철탑에 있는 현수막 내용만 달라졌습니다. '철탑농성 295일'이라는 간판도 보였습니다. 비정규직 노조 간부에게 왜 내려오기로 결정 했는지 물었습니다.

"울산이 36도 기온이 올라갈 때 철탑 위엔 40도가 넘습니다. 밤마다 모기 떼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있습니다. 좁은 공간에 지내다 보니 스트레스와 혈압상승, 근육이 줄어들면서 체력이 저하되고 있습니다. 두 동지가 철탑농성을 시작한 후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를 알려냈고 무엇보다 현장이 다시 조직되어 파업으로 라인이 끊기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성과를 계기로 현대차와 다시 협상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었습니다. 우리는 불법파견 투쟁을 끝내고자 철탑농성을 중단하는 게 아닙니다. 국내 최대, 최고 대기업을 상대로 불법파견 투쟁을 하는 것이니 만큼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 새 돌파구를 찾고자 지혜를 모을 것입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 간부들은 철탑농성자 맞을 준비를 위해 분주했습니다. 8일 일정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최병승, 천의봉 두 동지는 내일(8일) 오후 1시경 내려올 예정입니다. 그 전에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함께 기자회견을 할 것입니다. 노조는 먼저 경찰에 이야기를 해 협조요청을 했습니다. 지금 수배 상태이긴 하지만 두 동지는 집회 후 자진출두 할 것이니까 불상사가 생길 우려가 있으니 덮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경찰도 강경하게는 못할 것입니다. 철탑농성 끝내고 내려오겠다는데 강제 연행해서 시끄럽게 할 이유가 없거든요. 두 동지가 도망갈 것도 아니구요."

현대차 쫌! 오랜만에 가보니 못보던 현수막이 있었습니다. 한 정당에서 걸어놓은 현수막 이네요.
현대차 쫌!오랜만에 가보니 못보던 현수막이 있었습니다. 한 정당에서 걸어놓은 현수막 이네요.변창기

저도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입니다. 저는 지난 2000년 7월 초에 현대차 수동변속기 부품 생산하는 데 투입되었습니다. 사내하청 업체가 3번 바뀌면서 2010년까지 다녔습니다. 현대차는 오래전부터 부품 묘듈화 작업을 해왔습니다. 밖에서 부품을 조립해 가져 들어가 현대차 생산부서에서 조립만 하면 되게끔 한다는 것 입니다.


제가 일했던 공정 부품도 공정합리화 공사로 외주업체로 넘어가면서 저와 수십여 명의 업체 노동자가 정리해고 당해야 했습니다. 2010년 3월 중순경 그렇게 정리해고 당한 후 지금까지도 현대차는 묵묵부답입니다.

저는 억울했습니다. 제가 현대차에서 정리해고로 나온 지 4개월이 지난 후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그 소식을 들으니 더 억울했습니다. 불법파견으로 10여 년간이나 노동착취 당했다 생각하니 생돈을 빼앗긴 것 같아 억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조에 다시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저에게도 부당해고자로 인정하여 조합원으로 받아주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함께 활동했고 현대차의 조직적이고 지능적인 노동탄압을 지켜보면서 치가 다 떨렸었습니다.

철탑과 통화 법규부장이 8일 오후 1시 땅에 내려오는 문제에 대해 전화로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철탑과 통화법규부장이 8일 오후 1시 땅에 내려오는 문제에 대해 전화로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변창기

현대차는 이미 2004년경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바 있었지만 9년이 된 지금까지도, 게다가 지난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에서조차 불법파견 판결을 내렸는데도 불인정하고 있으니 '무슨 기업이 그런 기업이 다 있는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난해 10월 17일 최병승, 천의봉 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철탑 위에 올라갔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슴 저렸었습니다. '무사하기를, 건강하기를' 하면서 날마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보냈습니다.

현대차 노무팀이 가만히 있을 리 있었겠나요? 그날 밤 철탑 위에 올라가 밧줄로 자신을 묶고 버티던 두 노동자를 끌어내리려고 당장 용역 경비들과 관리자를 앞세워 철탑에 모였고, 젊은 용역 경비를 철탑에 올려 보내 노동자들을 끌어 내리려 했습니다. 목격자에 의하면, 현대차 관리자 중 한 사람이 "최병승 저 새끼 떨어뜨려 죽여버려"라고 외치기도 했다 합니다. 다행히도 긴급알림 소식을 전해듣고 조합원들이 철탑으로 모여들어 현대차 관리자들은 뒤로 물러섰다 합니다.

가을에 올라가 겨울을 보내고 봄, 여름까지 맞았습니다. 두 사람은 100일 정도만 버티면 현대차가 불법파견 정리하고 사내 모든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일을 시행하지 않겠나 생각했다고 합니다. "우리 이미 올라온 거 끝장을 보자"고 다짐했고 더 버티게 되었으며 그러다 200일을 넘기고 300일 가까이나 철탑 위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올라온 지 얼마 되잖아 한전 쪽에서 가처분 소송을 법원에 내어 철탑농성 해제하지 않으면 1인 30만 원씩 내라는 가처분 결정이 울산지법에서 내려졌습니다. 두 사람이 내야 할 벌금만도 2억 원 가까이나 되었습니다. 저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노동자에게 그 많은 돈이 어딨다고 벌금이랍니까?

"우리 노조는 금속노조 지회잖아요. 금속노조에서 처리할 겁니다. 금속노조 소속 변호사가 있으니까요. 그 부분은 지금 소송 중에 있어요. 아직 결정도 안 났구요. 지켜볼 일입니다."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경찰에 자진출두해서 조서 꾸미고 검찰로 넘어가면 구속영장 신청되겠죠. 구속여부는 법원 판사가 결정할 일이구요. 우리는 보석신청을 할 겁니다. 보석으로 풀려나거나 구속되거나 하겠죠. 풀려나면 몸 회복을 위해 한 달 정도 요양이 필요할 겁니다. 그 후 다시 불법파견 투쟁에 결합하겠죠."

철탑농성 295일차 철탑농성은 이제 역사 속으로 덮어 집니다. 그러나 불법파견 상징으로 우리 가슴에 살아있게 될 것 입니다.
철탑농성 295일차철탑농성은 이제 역사 속으로 덮어 집니다. 그러나 불법파견 상징으로 우리 가슴에 살아있게 될 것 입니다.변창기

그렇게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문 앞 철탑농성장의 295일차 밤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날이 밝으면 기자회견과 집회 준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낮 12시경 비정규직 노조원과 희망버스 그리고 지역 활동가가 모여 집회를 하고 기자회견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빌려온 사다리차를 철탑 위로 올려 두 사람을 실어 내릴 것입니다.

함께 집회를 한 후 철탑농성장 앞 멀찌감치 대기중인 경찰차에 올라 경찰서로 송치될 것 입니다. 비정규직 노조 법규부장에 따르면, 농성장 정리는 3일간 말미를 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철탑농성장을 치우고 정리해야 할 게 많기 때문이라 합니다.

철탑농성 296일차 되는 8일(목) 오후 1시. 현대차 하청업체 다니다 노조활동을 이유로 해고 되었고 해고무효소송 과정에서 지난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으로부터 "파견법 6조 3항 고용의제 조항에 의해 2년 이상 된 노동자에 대해 이미 현대차 정규직으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문을 받았던 최병승. 그리고 그와 같이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천의봉. 두 사람이 다시 땅을 밟게 되는 날입니다.

대한민국 불법파견의 상징이 된 현대자동차. 296일간이나 철탑농성을 해 전 세계에 현대차의 불법파견 문제를 알려낸 두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철탑농성장 아래서 묵묵히 식사를 책임진 담당자와 철탑농성장을 지키기 위해 철탑주변에서 노숙하면서 함께 지낸 모든 분들,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위해 기꺼이 희망버스를 조직하고 울산까지 달려와 주신 모든 분들께도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죽지말자! 최병승,천의봉 두 비정규직 노동자는 절규합니다. 현대차 아산지회 비정규직 노조 간부가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죽지말자고, 살아서 투쟁하자고...
죽지말자!최병승,천의봉 두 비정규직 노동자는 절규합니다. 현대차 아산지회 비정규직 노조 간부가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죽지말자고, 살아서 투쟁하자고...변창기

저는 두 노동자가 땅을 밟는 그 시간에 그곳에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하루라도 일을 다니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마음만은 철탑에 있을 것입니다. 늦은 밤 저는 다시 내일 출근을 위해 철탑농성장을 뜹니다. 주변을 살펴보니 철탑농성 마지막 날임에도 경찰 감시차량도 여전히 있으며 현대차 감시차량도 여전히 서 있습니다.

전경련이나 경총, 상공회의소, 현대차 같은 대기업 그리고 경찰, 검찰, 국가권력자들. 그들은 허구한 날 노사평화를 외쳐댑니다. 그들이 강조하고 주장하는 그 노사평화란 게 도대체 뭔지 그들을 만날 수만 있다면 물어보고 싶습니다. 꼭.

하루 60만원 짜리 고공농성장. 철탑농성후 한전은 울산지법에 가처분을 냈고 법원은 1인 30만원씩 매일 한전에 지급하라는 결정문을 내렸습니다.
하루 60만원 짜리 고공농성장.철탑농성후 한전은 울산지법에 가처분을 냈고 법원은 1인 30만원씩 매일 한전에 지급하라는 결정문을 내렸습니다. 변창기

#현대차 #철탑농성 #296일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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