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리역의 국창 임방울 선생 기념관
김종길
송정리역을 떠난 지하철은 송정공원역에서 잠시 섰다. 대도시답지 않게 번잡함이라곤 찾을 수 없는 광주의 지하철은 잠시 시간을 비켜선 듯했다. 객차와 객차 사이의 출입문이 모두 열려 있어 곡선구간을 지나칠 때면 길게 늘어진 열차 내부의 모습이 마치 속을 모두 비워낸 뱀의 몸뚱아리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거대한 뱀의 몸 안에 들어온 듯한 그 기괴한 느낌에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송정공원 가는 길은 광주라는 대도시와는 딴판인 한적한 시골이었다. 공원 앞에 다다랐을 때 철로가 가로질러 있었고 기차가 덜커덩덜커덩 지나는 걸 한참이나 지켜본 후에 관리원의 지시에 따라 길을 건널 수 있었다. 공원 층계를 막 올랐을 때 30대쯤 보이는 여자가 여행자를 보고 실없이 웃었다. 순간 답례로 웃음을 주었으나 그녀의 눈빛에 초점이 없다는 걸 깨닫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작은 산기슭 언덕에 불과한 변두리 공원을 찾은 데에는 "그냥 작은 공원인데요. 특별하게 볼거리가 없습니다"고 했던 안내소 직원의 만류도 한몫했다. 굉장한 볼거리나 있었다면 이렇게 공원을 샅샅이 훑는 수고로움은 애초에 없었을 터, 이 작은 언덕에서 추억할 만한 무언가를 찾아야겠다는 의무감마저 들었다.
그 관찰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도서관 한쪽 공터에 현충탑이 있었고, 언덕 아래로 비석 같은 것이 보였다. 언덕을 돌아내려 가서 부채와 북의 모양을 띤 국창 임방울 선생 기념비임을 확인했다. 문득 용아 선생의 시비도 이곳에 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 어디쯤이 아닌가 하여 다시 왔던 길을 더듬어보는 데 숲 한쪽으로 배의 형상에 사람의 얼굴 같은 두상이 얼핏 보였다. 돛을 활짝 펼친 배에다 빗장에 자물쇠까지 채워 놓아 용아 선생의 <떠나가는 배>는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용아 박용철 시비였다. 겉으로 보기에 볼품없는 송정공원은 이 두 기념비로 인해 튼실한 문학의 산실임을 넌지시 말하고 있는 듯했다.
아파트에 둘러싸인 초가집 한 채, 용아 박용철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