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는 가라... 북새통 이루는 재래시장

암행어사 박문수도 치켜세운 전라도 광양의 오일장

등록 2013.07.28 20:34수정 2013.07.2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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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장날이면 온종일 사람들로 북적이는 광양장. 장터 구경의 재미가 쏠쏠한 재래시장이다.

장날이면 온종일 사람들로 북적이는 광양장. 장터 구경의 재미가 쏠쏠한 재래시장이다. ⓒ 이돈삼


'팔도에서 전라도가 가장 살기 좋고, 전라도에서는 광양이 으뜸이다.' 암행어사 박문수의 얘기였다. 그의 말을 따라 전남 광양으로 간다. 매 1일과 6일 열리는 광양장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지난 21일이었다.


이른 아침 도착한 광양장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여수, 순천, 하동에서 장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이들이다. 장이 서는 날이면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5000여 명이 족히 넘는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얘기였다. 장꾼에게 말을 건네기는 커녕 어깨 너머로 물건의 품새를 살펴야 할 정도다.

흔히 시장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고 한다. 광양장이 딱 그 모양이다. 언뜻 보기에도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형마트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다.

a  광양장 풍경. 요즘 보기 드물게 오래 전 재래시장의 모습과 느낌이 살아있다.

광양장 풍경. 요즘 보기 드물게 오래 전 재래시장의 모습과 느낌이 살아있다. ⓒ 이돈삼


a  광양장의 대장장이. 광양장의 명인으로 통하고 있다.

광양장의 대장장이. 광양장의 명인으로 통하고 있다. ⓒ 이돈삼


"그럴 수밖에 없제. 광양읍 인구만 해도 5만이여. 바로 옆의 봉강, 옥룡 사람들까지 합치면 7만은 될 거여.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용할라믄 이 정도는 해야제. 시장 상인만 해도 한 600명은 될 걸."

시장 주차장에서 만난 백발 노인의 얘기였다. 광양장은 전남 동부권에서 최고의 장으로 정평이 나 있다. 주민들은 물론 장돌뱅이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여기저기 싸돌면서 장사를 하는데, 광양장 만한 곳도 없지예. 맨날 광양장만 같으면 폴새 떼부자가 되고도 남았을 깁니다."


정겨운 경상도 사투리로 대꾸를 해 준 이는 어물전에서 장어를 손질하고 있던 오기심 할머니다.

a  광양장의 뻥튀기 집. 재래시장의 흥을 북돋우는 곳이다.

광양장의 뻥튀기 집. 재래시장의 흥을 북돋우는 곳이다. ⓒ 이돈삼


장터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데 뻥튀기 가게가 보인다.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뻥튀기 집이란다. 뻥튀기 집은 전 씨 할머니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그 옆의 대장간도 보인다. 장터의 명인으로 이름 난 대장장이 박경종 씨의 터전이다.


지난해 시장 현대화사업을 하면서 '마스코트'로 만든 곳이다. 시장 곳곳을 장식한 장옥에 초가를 얹은 모습도 색다른 풍경이다.

"어허, 이 사람도 속네. 저건 볏짚이 아니여. 기와를 만드는 재질로 만든 거여."

상인들이 박장대소한다. 그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봤지만 영락없는 초가다. 전통미를 살리려는 아이디어가 빛났다. 그럼에도 장옥과 장옥 사이를 너저분한 천으로 가려 햇볕과 비를 막는 모습은 뭔가 어색하다.

인파에 밀려 한 발 한 발 내딛기도 쉽지 않은 장터지만 정갈하다. 채소전, 어물전, 의류전, 곡물전 어느 곳 하나 흐트러짐이 없다. 바닥에 선을 그어 놓은 일명 '고객선' 때문이다. 장이 열리는 날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순회하며 쓰레기통까지 물로 씻는 상인회의 노력 덕분이기도 하다.

고객선 안으로 매실, 방울토마토, 오이 등 광양 특산물이 가득하다. 봄이면 백운산의 산채가, 가을이면 감과 밤이 장터를 뒤덮는다. 광양장을 살찌우는 보물 같은 존재들이다.

a  광양장 어물전. 광양장은 시쳇말로 없는 것 빼놓고는 다 갖춘 재래시장이다.

광양장 어물전. 광양장은 시쳇말로 없는 것 빼놓고는 다 갖춘 재래시장이다. ⓒ 이돈삼


a  광양장 채소전. 재래시장에서 가장 흔한 장꾼들이다. 하지만 없어서는 결코 안될 사람들이다.

광양장 채소전. 재래시장에서 가장 흔한 장꾼들이다. 하지만 없어서는 결코 안될 사람들이다. ⓒ 이돈삼


"제철(광양제철)이 들어오기 전에는 해산물도 유명했제. 갯가에 나가면 백합조개, 굴, 운저리가 밟힐 정도였응께. 그런데 제철이 들어오면서 한순간에 사라졌어."

유정모 상인회장의 말에 아쉬움이 묻어난다. 아쉬운 건 또 있다. 제 철을 맞은 광양의 명물 재첩을 구경하기도 쉽지 않다. 장마철에는 제첩의 맛이 덜 여물어 잡지 않는단다. 광양장에서 살아숨쉬는 재첩을 볼 수 없는 게 못내 아쉽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데 길손의 눈을 사로잡는 게 있다. 널따란 함지박에 자라, 가물치 등과 뒤섞여 이리저리 수영하는 게 있다. 장어처럼 기다랗게 생겼다.

"드랭이여. 옛날에 논에 많았제. 논두렁에 구멍을 파서 물을 쪽 빼버려 농부한테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제."

덕여리에서 새벽밥을 먹고 나왔다는 김 할머니의 얘기다. 보신식품으로 알려져 남획되고 환경도 변하면서 개체 수도 줄었다.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것이다.

a  광양장의 망중한. 할머니 장꾼들이 모여 도시락을 내놓고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광양장의 망중한. 할머니 장꾼들이 모여 도시락을 내놓고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 이돈삼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흘러 코끝을 스친다. 그 냄새를 따라가니 김을 굽고 있다. 역사적으로 매실, 감, 재첩보다 유명했던 특산물이 '광양김'이었다. 광양은 김 시식지로 궁중에 진상까지 되며 한때 전국 최대의 김 생산지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하지만 광양제철이 들어서면서 바다가 매립돼 그 자취를 감췄다. 지금은 멀리 완도, 해남 등지에서 들여온다. 장터국수로 허기를 달래며 점심시간을 한참 넘겼다. 여느 장 같으면 장터가 파할 시간이다. 하지만 광양장은 여전히 북적거리고 있다.

a  여전히 북적이는 광양장.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장터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여전히 북적이는 광양장.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장터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광양장 #재래시장 #광양오일장 #뻥튀기 #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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