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알이 이슬방울 속에 피어난 꽃들을 보다

[포토에세이] 이슬

등록 2013.07.26 18:26수정 2013.07.2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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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쇠뜨기에 맺힌 이슬방울 ⓒ 김민수


이슬이 많은 날은 아니었다. 그래도 긴 가뭄에 마른 바람이 불지 않으면 언제나 이슬을 맺는 풀이 있다. 쇠뜨기가 그 주인공이다.


일액현상이 활발하여, 제 몸에 있는 물을 밤새 줄기 끝마다 내어놓고 아침이면 물방울 보석으로 치장하고 향연을 펼친다. 일액현상이란 사람으로 치면 소변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제 몸에 있는 물을 스스로 배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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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맺힌 이슬방울에 새겨진 백일홍 ⓒ 김민수


다른 풀들에는 이슬이 내리지 않았어도, 제 몸에서 내어놓은 것만으로 충분하게 이슬방울을 촉촉하게 달고 있는 쇠뜨기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풀이다.

한 번 자리잡고 피어나면 여간해서는 없앨 수 없고, 뿌리도 잘 끊어져서 아무리 뽑아도 다 뽑아낼 수가 없다. 그토록 강인한 생명력은 줄기와 뿌리의 연약함과 날마다 제 몸의 물을 비워내는 텅빈 충만이 비결일 터이다.

연약함이 오히려 삶을 이어가는 동력이 되고, 스스로 비움으로 인해 아침마다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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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이슬에 새겨진 루드베키아 ⓒ 김민수


마다마디 약하되 약하지 않고, 이른 봄이면 뱀대가리마냥 올라온다. 그 줄기도 연약하기는 마찬가지라 어린 아이의 손으로 만져도 물러버리고 부러질 정도로 약하다.


그렇게 약한 줄기는 꺾어져서도 포자를 날리고, 포자가 제 역할을 다할 즈음이면 전혀 다른 존재인듯 다른 모양의 풀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성경말씀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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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자기의 색을 고집하지 않되 자신의 색을 잃지 않는 이슬 ⓒ 김민수


바람이 불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작은 떨림이 그를 흔든다. 살면서, 내가 흔들리는 것인데 세파가 나를 흔드는 것이라고 서운해 하면서 원망의 삶을 살아갈 때가 많다. 세파가 흔들기도 하지만, 근원의 문제는 나 자신이 아닌가?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것들이 있고,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것들이 있다. 그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뚝심있는 삶을 원한다. 잠시 흔들려도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이면서 그 흔들림으로 더 견고한 자신을 만들어가 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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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그리 맑고 아름다워도 짧은 삶을 사는 이슬 ⓒ 김민수


아침부터 여름 햇살은 후텁지근하고 아직은 더위에 물들지 않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햇살과 바람은 이슬에게는 치명적이다.

그러나, 그렇게 또 그들은 미련 없이 간다. 아름답고 맑은 것이라고 끝내 존재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내일 아침이면, 내가 그들을 바라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피어나리라는 것을.

알알이 이슬방울 속에 피어난 꽃들, 그럴 수 있음은 그들이 맑기 때문이며 자기를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담아내는 이슬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품어본다.

여름은 세파에 시달린 이들이 자연의 품으로 달려가 잠시라도 기대어 휴식하는 시간이다. 그 휴식의 날들 중, 아침엔 잠시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 휴식일 터이다. 그 작은 이슬방울 속에 맺힌 세상, 그것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하루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슬 #이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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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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