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모의>언론인 조갑제씨가 낸 책 <역적모의>. 그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읽어본 이들을 취재해 이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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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씨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읽어본 이들을 취재해 작성한 책 <역적모의>에 따르면 국정원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읽은 이명박 대통령은 "너무 창피하다. 이 정도면 국민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경악했다고 한다.
또 대화록을 읽은 복수의 인사들은 "노무현은 교사한테 보고하는 학생 같았다" "굴욕적이라 다 읽을 수 없었다" "국익을 갖다 바치려 애쓰고 모습, 김정일한테 칭찬 받으려고 애쓰는 형국" "거의 매국노 수준이다"라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이 책은 전하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 6월 24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공개했다. 불법 논란 속에서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남재준 국정원장은 설명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을 확인한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이나 대화록을 같이 읽었던 정부 관료들과는 생각을 달리했다. "NLL 포기 발언이 어디 있냐"는 것이 대화록을 접한 이들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NLL 포기 발언'으로 왜곡해 대선에 이용한 새누리당은 책임을 져야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5%가 'NLL 포기가 아니다'라고 대답한 반면, '포기로 본다'는 21%에 불과했다.
조갑제씨의 책(초판)이 나온 뒤 2013년 <월간조선> 2월호에는 정부 고위소식통으로부터 입수했다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검토 보고서>라는 대외비 문건이 실렸다. 2009년 국정원이 남북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문건은 A4 용지 10장 분량으로 '대외비 09. 5. 11 限 파기'라고 적혀 있다. 여기에는 노무현 김정일의 10·4 남북정상회담뿐만 아니라, 김대중·김정일의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주고 받은 이야기에 대한 국정원의 비판적 견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문건 첫머리에서 국정원은 "남북 정상 간 '대화록'은 주로 공동선언문 의제 논의에 집중되어 있으나, 국가 정체성 훼손 및 국가수반으로서 위신 손상 등 문제점이 상당하다"고 의견을 적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당시 발언 내용을 인용하며 조목조목 비판적 의견을 기술했다.
'안보의식 결여' '국가정체성 훼손' '북한에 끌려다니기식 회담' '국익 저해' 등 부정적 의견이 다수로, 6.·15, 10·4 남북정상회담의 긍정적 평가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대외비'로 2009년 5월 11일에 파기되었어야 했을 국정원 문건이 4년이 지난 2013년 2월 <월간조선>에 전문이 고스란히 실리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한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보좌한 국정원이 그 내용을 이렇게 악의적으로 평가해 이명박 정부에 보고했다는 사실 역시 놀라운 일이다.
대외비 문건에는 '국정원은 이 같은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6·15 및 10·4선언'의 문제점을 대내외에 전파하여, 북한·좌파의 전면이행 주장을 제압하고 우리 대북정책의 정당성을 부각해 나가겠음' 이라고 서술돼 있다. 이 내용을 보면 국정원이 이명박 정권의 정상회담을 돕는 차원이 아닌 6·15와 10·4 남북정상회담을 부정하는 논리로 서술된 내용들을 전파했다고 밖에 보기 어렵다.
조갑제씨는 <역적모의> 책에서 국정원에 보관되어 있던 녹취록을 2008년 말에서 2009년 초 사이 이명박 대통령과 참모진이 읽었다고 밝혔다. 또한 <월간조선>에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검토'라는 국정원 대외비 문건이 실렸다.
이 두 내용을 보면, 국정원에 보관돼 있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올해 6월 일반인에게 공개되기 전 이미 많은 이들에게 공개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이를 대선전에 전략적으로 이용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국정조사 물타기' 성공한 새누리당과 보수언론 대선 전 '노무현 대통령 NLL 포기'를 주장했던 정문헌 의원 등 여권 인사들은 국정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24일 국회에서 박범계 의원이 공개한 권영세 주중대사(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 종합상황실장) 녹취록에도 "조갑제씨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본 사람들 얘기를 들었다"는 대목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