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가습기살균제 손해배상 소송 공판이 열린 23일 오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족 장동만(48, 대전)씨가 법원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다.
이기태
마스크를 쓰고 이날 법정을 찾은 백현정(34)씨는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인데 시간을 끌기 위해 없는 말을 한다"며 분노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폐이식을 받은 환자다. 둘째 딸이 태어나면서 쓰기 시작한 롯데마트의 PB 상품인 와이즐렉은 그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둘째 딸은 생후 15개월 되던 때 가습기살균제로 세상을 떠났다.
백씨는 지방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둘째 딸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도 못했다. 백씨와 큰 딸(당시 6살)도 작은 딸과 같은 증상으로 서울아산병원에 실려가 결국 폐이식 수술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큰 딸은 상태가 더욱 심각해 심장이식수술까지 받았다. 백씨는 "작은 아이가 하늘로 간 사실을 폐이식을 받고 나서야 알았다"면서 "작은 아이도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고통스럽게 보낸 거 같아 정말 미안하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신장까지 안 좋아진 8살 큰 딸은 일주일에 네 번, 혈액투석을 받고 있다. 백씨와 딸의 이식 수술비로만 3억 원이 들었다. 경제적, 정신적 고통에 허덕이는 백씨가 정부로부터 받은 혜택은 아무것도 없다. 기업 측에서는 "정부 조사가 잘못됐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중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책임지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현실이 잔혹하기만 하다.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피해구제법 제정에 대해 "손해배상소송이 진행 중인 것과 유사법률 양산 가능성 등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소송이 몇 년을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의 무책임한 주장에, 피해자들은 기댈 곳 하나 없이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내고 있다.
법정을 나서 피해자들은 법원 후문 앞에 섰다. 그들은 쏟아 붓는 비에도 아랑곳없이 릴레이 1인시위를 진행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긴 소송, 그들의 피해에 대해 책임지는 이 하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래도 공정한 재판 결과와 책임 있는 보상, 구제가 이뤄지길 바라는 소망을 놓고 싶지 않은 표정들이었다.
길을 지나던 한 시민은 "우리집도 가습기살균제를 썼는데 짧은 기간 써서 다행이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모습에 가슴 아프다"며 "피해자들이 억울하지 않도록 좋은 대책과 또 올바른 소송결과가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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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조사가 잘못됐다" 가습기살균제 기업 '발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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