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
안양문화예술재단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은 읽는 동안 '기대'와 '실망' 사이를 부지런히 오간 책이었다. 괜찮은 내용이 담기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시작은 너무나 '상투적'이어서 실망했던 것.
평범한 주부의 일상이 펼쳐지는 프롤로그 '엄마의 시간'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의 현실을 관념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삶을 사는 엄마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 시대의 '엄마'들 가운데 몇이나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아갈까?
많은 엄마들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일자리를 찾아 나서거나 내몰린 지 오래다. 나 역시 '엄마'이지만 '평범한 전업주부'가 아닌 것을.
이렇게 관념적이면서 상투적으로 시작하는 내용이라면 '안 봐도 비디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갈등이 이어졌다. 계속 읽어, 말아? 이어지는 대목은 '공연 직전' 풍경. 7개월의 지난한 과정을 거친 뒤, 이들은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로 했고, 공연 직전 분장실 풍경이 그려졌다.
이 대목도 실망이었다. 엄마 단원들의 전후 사정이 생략된 채 상기된 표정으로 혹은 흥분된 목소리로 공연을 준비하는 상황이라니, 얼른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대목은 책을 끝까지 다 읽은 뒤에 다시 읽으니 그 정경이 구체적으로 상상이 됐다. 아, 이랬겠구나. 이 때는 '감동'으로 느낌이 전환됐다.
처음의 실망은 오래 가지 않았다. 책장을 넘기면서 점점 더 내용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엄마들의 이야기는 사소한 일상을 반영하면서도 공감대를 넓게 형성하는 특별한 내용이 있었다.
또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을 읽으면서 나는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실현한 모든 이들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안양문화예술재단 공연참여프로젝트'는 평범한 주부들을 불러 모아 연극을 맛보게 한 뒤, 어설프나마 '유명한' 연극을 공연하게 한 뒤 홍보에 열을 올리는 일종의 '실적 쌓기'가 아니었다.
목적이 분명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배우를 발굴하거나 능력 있는 사람을 키워주는 게 아니었다"는 거다. 공공재단이 할 수 있는 '공공의 역할'을 하겠다는 한계를 명확히 그었다. 이런 목적은 연출자(김종석), 제작감독(심우인), 조연출(이기봉) 등의 고백을 통해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문화재단이 개인의 능력 개발을 위해 '투자'를 할 수도 있으나, 방점은 '개인'이 아닌 '공공'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이들 기획자들은 엄마 단원들이 무대에 올리는 공연을 엄마들이 '구질구질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이야기로 만들어 냈다. 전혀 구질구질 하지 않게. 엄마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무대에 올린다는 건 다시 말하자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일종의 치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의도였던 것. 그 의도는 딱 맞아 떨어졌다. 환상적이면서 멋진 공연을 꿈꾼 어느 참여자는 실망을 곱배기로 했지만. 그래도 이 참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고, 그 소감을 책에서 솔직하게 밝혔다.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은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재미와 감동도 더불어 주는 책이라는 것은 읽으면 읽을수록 깨닫게 된다. 어쩌면 내 유전인자에 '엄마'라는 염색체가 새겨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닉네임으로 표기된 참여자들의 내밀하면서 솔직한 고백은 읽는 동안 내내 마음을 울렸다. 감동을 넘어 울컥하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그건 '엄마'라는 염색체를 공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