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지은이 정동주┃펴낸곳 (주)도서출판 한길사┃2013.06.30┃2만 3000원
(주)도서출판 한길사
정동주가 지은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는 조선시대에 살던 한 여인, 가난한 사람들과는 나누고 상처받은 이웃들은 사랑으로 보듬던 장계향의 일생을 그려낸 내용입니다.
경상도 여러 재력가 중에서 빈민구제에 열정을 바쳐온 가문은 적지 않다. 그러나 그 헌신을 자랑하지 않은 집안은 재령이씨 운악가뿐이다. 그래서 빈민구제의 숨은 보살인 운악의 셋째 며느리 장계향의 선행은 우리 시대에 와서야 뒤늦게 알려졌다.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 483쪽 장계향은 임진왜란이 끝나던 1598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성리학자인 경당 장흥효의 딸로 태어납니다. 5살 때부터 아버지가 글 읽는 소리를 듣고 흉내내고, 12살에는 소학을 모두 외울 만큼 총명한 아이입니다. 19살에는 상처한 홀아비, 전처 자식이 둘이나 있는 이시명을 사위로 삼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이시명과 혼례를 올립니다.
만석꾼 부자인 이함, 운악의 며느리가 된 장계향은 전처 자식인 상일을 날씨가 추운 날에는 업고 마을 훈장에게 데려가 공부를 시킬 만큼 정성을 다해 키웁니다. 장계향은 어머니 자리를 물려받은 계모로서 뿐만이 아니라 시부모 공양에는 효성 지극한 며느리, 남편에게는 내조 잘하는 아내로 살아갑니다.
부잣집 며느리가 된 장계향은 책을 보면서 익힌 나눔과 사랑을 실천합니다. 장계향이 노비의 처소까지 직접 찾아가며 실천한 나눔과 사랑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만큼 적극적이었고 헌신적이었습니다. 장계향은 나눔을 실천하는 데 신분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반상이 엄격한 시대였지만 병들고 늙은 노비의 몸을 손수 씻겨주기를 기꺼이 솔선하였습니다.
장계향이 나누는 것은 부잣집 곡간에 쌓인 부와 쌀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우려내고 사랑으로 키워야만 거둘 수 있는 측은지심이었습니다. 기근을 예상해 도토리 죽을 끓이고 칡뿌리를 준비하는 지혜도 한 몫을 하였습니다. 헐벗고 추위에 떠는 이들은 길쌈으로 감싸고, 병들고 지친사람들은 극진한 간병으로 돌봤습니다.
장계향이 달래 준 배고픔, 장계향이 실천한 긍휼이 진정 위대한 것은 가진 자라고 해서 거만하지 않고, 베푸는 자라고 해서 기세등등해 하지 않았던 겸손함과 진심에서 우러나는 사랑이었습니다. 부잣집 며느리라고 떵떵거리지 않고 도리어 재물이 고르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던 마음이야 말로 가슴 절절한 자비심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비록 생존의 위협 때문에 충효당에 와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지만, 그들 안에 들어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까지 능멸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도록 해주고 싶었다. 도와주는 사람도 도움 받는 사람도 서로 인간의 존엄성까지 짓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장계향이 생각해낸 것은 노비들이 음식이나 곡식을 빈민들에게 나눠줄 때 반드시 두 손으로 건네고 편안한 표정으로 인사하도록 하였다. 죽 그릇을 한 손으로 건네면서 엄지손가락을 그릇 안쪽에다 밀어 넣은 채 집어던지듯 하는 버릇을 고쳐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고함을 지르고 반말투에다 박대하는 행동을 고쳐야 한다. 자신들이 권력이라도 행사하듯 하고, 빈민들을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다고 여겨온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 340쪽-한 여인으로만 보는 장계향의 일생은 결코 평탄하지 않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이가 둘이나 딸린 홀아비와 결혼을 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보다 3살이나 어린 여자를 계모로 모셔야하는 운명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장계향이 꾸렸던 운명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피동적 운명이 아니라 시대를 거스를 만큼 적극적으로 개척한 스스로의 삶이며 인생입니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자신보다 3살이나 어린 여자를 아버지와 혼인시키고, 계모에게 살림을 가르치는 모습이야 말로 시대를 초월하는 효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눔 그대로의 나눔, 사랑 그대로의 사랑지금도 그렇고 조선시대에도 베푸는 재력가들은 있었습니다. 그러함에도 장계향의 나눔과 사랑이 수백 년이 흐른 지금에 다시 평가 받을 수 있는 건 장계향이 실천한 나눔과 사랑이야 말로 나눔 그대로의 나눔이며 사랑 그대로의 사랑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자로서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나눔, 가진 자로서 거들먹거리며 베푸는 시혜적 사랑이었다면 주고도 욕먹고, 약속하고도 비아냥 대상이 되는 작금의 몇몇 대기업 사주들과 다를 게 없었을 겁니다. 불쌍한 사람이 찾아오면 이해타산 가리지 않고 그냥 도와주는 마음, 얻어먹는 이의 마음까지도 헤아리는 겸손한 사랑이었기에 저절로 드러나는 진실처럼 서서히 밝혀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