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들과 연애할 각오 없으면 꿀도 없다

[서평] 스티브 벤보우의 <도시양봉>

등록 2013.07.22 18:38수정 2013.07.2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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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도시양봉〉
책겉그림〈도시양봉〉 들녘
"늦게까지 일하면 밥 먹을 시간도 없다. 심지어 삶은 달걀을 까먹는 일조차도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고 여길 정도다. 트럭에서 잠이 트럭이나, 혹은 런던 북부의 양봉장 숲 속에서 방수포를 덮고 자거나, 심하게는 옥상에서 잠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야만 일을 끝마칠 수 있다."(154쪽)

스티브 벤보우의 <도시양봉>에 나오는 이야기다. 벌을 키우고 꿀을 채취하는데 그 보다 더 시간을 바쁘게 보는 일도 없다는 뜻이다.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5월 달엔 무척이나 바쁜 시간들을 보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통 벌을 키우며 꿀을 캐내는 사람들은 다들 한가한 사람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래 전 시골 교회의 목사님도 그랬다. 검은 면사포 같은 것을 쓰고서 아침 시간에 벌통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평화롭게 보였던 까닭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전혀 달랐다. 양봉업자들은 결코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잠시 짬을 내서 하는 일도 결코 아니었다. 1월부터 12월에 이르기까지, 매월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더욱이 벤보우는 한적한 시골에서 양봉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시 근교의 옥상과 빌딩, 심지어 백화점과 호텔에서까지 양봉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더더욱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5월과 6월은 분봉 때문에 바쁘고, 7월과 8월은 꿀을 채취하는 것 때문에 더더욱 바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시골의 한적한 양봉과 달리, 도시의 고층건물이나 기중기나 무선안테나 그리고 교회의 첨탑 같은 곳을 피해 다녀야 하는 도시양봉은 그야말로 벌들에게 험난한 여정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벌집을 자르다가 벌집나방 유충을 발견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유충들은 벌집을 워낙 빠른 속도로 파괴한다. 사람들에게 가공하지 않은 벌집의 경이로운 점을 교육하는 일은 내 양봉사업의 대들보나 다름없는데 이미 자른 벌집 한 조각에서 구더기 한 마리를 발견한다면, 한 마디로 참하다. 이런 일을 피하고자 벌집을 냉동냉장 설비로 결빙온도에서 시원하게 보관한다."(291쪽)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양봉하는 일이 결코 만만찮은 일임을 알게 된다. 벌집나방 유충, 말벌들의 공격, 분봉시기를 놓치는 것, 환풍기가 막혀 벌들이 질식하는 것 등등, 그것들은 정말로 쉽지 않는 일이다. 그만큼 벌들과 깊이 있는 사귐을 필요로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마치 연애하듯이 말이다. 벌들과 깊이 사귀지 않는다면, 그저 꿀을 채취할 목적으로만 양봉한다면,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잃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그랬는가보다. 예전에 남한산성 아랫자락에서 만난 그 목사님 말이다. 40대 중반의 그 목사님도 그곳에서 벌통 몇 개에다 벌을 키우며 꿀을 채취하고 있었다. 그 해 겨울에 만난 그 분의 얼굴은 울상이었고, 이듬해 가을에 만난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겨울철에는 날씨가 추워 벌들이 많이 죽어버린 탓에 풀이 죽어 있었고, 가을철엔 그래도 많은 벌들이 번식했고 또 아카시아 꽃들도 만발하여 평년보다 더 많은 꿀을 채취했던 까닭이다. 그 분도 개척교회를 하면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 작은 벌통 속에 든 벌들과의 사귐을 통해 적잖은 위로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양봉, 그것도 도시양봉.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골이 고향인 꿀벌들이 도시로 이사온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녀석들이 도시에서 잘 적응하여 산다는 것은 촌놈인 내가 도시에 적응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던 일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꿀벌들과 연애할 각오를 해야만, 깊이 사귀는 공을 들여야만, 그때부터 양봉의 길은 열리지 싶다.

도시양봉 - 도심 속 양봉가의 즐거움

스티브 벤보우 지음, 이은주 옮김,
들녘, 2013


#스티브 벤보우의 〈도시양봉〉 #벌들과 연애해야 #벌집나방 유충 #말벌들 #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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