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캄보디아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캄보디아교민 김성준 선생(우)
이안수
그날을 돌아보면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왜 모든 돈을 전대에 담아 나왔는지, 왜 전대를 허리에 두르지 않고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는지, 다가오는 그들을 왜 의심하지 않았는지…. 그것은 예정된 운명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배낭여행 경험이 많은 자신이 가장 기본적인 안전수칙에 그렇게 방심했을 리가 없었습니다.
날치기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신고서 작성을 돕던 경찰은 서류작성 대가를 요구했습니다. 주머니에 남은 몇 푼의 돈까지 그 경찰에게 건네고 방을 얻어놓은 씨엠립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캄보디아에서의 무일푼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10여 년의 치열한 세월은 캄보디아를 증오하기보다 더욱 사랑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캄보디아 여인과 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얻었습니다.
9세기에서 15세기까지 태국과 라오스, 베트남까지 다스렸던, 자신들이 있는 곳을 세계의 중심으로 믿었던 크메르 제국의 영욕을 공부했습니다. 앙코르의 돌 조각하나하나에 담긴 그들의 경이로운 생각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앙코르의 방대한 석조 건축물들에 조각으로 남은 제국의 과거를 상세히 이해하는 사랑과 힌두교에서 관세음보살신앙이 뿌리내리는 종교적 과정뿐만 아니라 정치적 변화의 이유에 대해 막힘없이 답하는 깊이를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캄보디아 사람보다 캄보디아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한국산 캄보디아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