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2012년 12월18일 오후 부산 동구 부산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유세에서 지지자들이 박정희, 육영수 사진을 들어보이며 박 후보를 응원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나는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를 모방한 전두환의 12·12쿠데타와 5·17쿠데타 이후 1987년의 '6월 항쟁'으로 얻어진 대통령 직접 선거에 참여하면서 1987년의 제13대 대선 때는 서산군 '공명선거 감시단'의 태안 대표로, 또 1992년의 제14대 대선 때는 태안군 '공정선거감시단' 상임의장으로 활동했다. 내 돈 쓰고 온몸으로 뛰면서 동네 어깨들과 싸우느라 눈물겨운 상황들을 겪기도 했다.
1997년 제15대 대선 때는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의 감격을 누렸고, 2002년 제16대 대선 때는 민주세력의 놀라운 응집력을 확인하며 민주주의의 발전과 통일에 대한 희망을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07년의 제17대 대선과 지난해 2012년의 제18대 대선을 치르고 오늘에 이르는 시간 속에서는 민주주의의 후퇴와 심각한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후퇴 현상, 노골적인 위기 상황 속에서 내 마음 상태를 다시 한 번 다독이지 않을 수 없다.
내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청년 시절 삼선개헌 국민투표 때 찬성표를 던지고 시월유신 국민투표 때 93%의 찬성 쪽으로 휩쓸려버렸던 관성을 지금도 곱다시 유지하고 있다. 대체로 깊은 통찰의 눈과 '생각의 힘' 쪽으로는 연마의 기회를 갖지 못한 듯하다. 그저 과거 어려웠던 시절을 반추하며 민생을 살린 박정희의 공을 옹호하는 쪽으로만 기를 쓴다.
오늘 민주니 인권이니 양심 따위를 찾는 것도 다 먹고 살만 하니까 하는 짓이라는 말을 노상 한다. 그게 다 박정희 공인 줄도 모르고 박정희 욕을 하니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도 거침없이 내뱉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서 천지분간 모르는 것들은 몽땅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고 극언을 하는 친구도 보았다. 그런 친구들 가운데서 외로움을 느낄 때도 많다.
나는 경제발전이라는 것의 본질적인 가치, 궁극적인 지향점에 대해 친구들에게 논한 적이 있다. 우리가 산업발전을 이루고 경제를 향상시키려는 근본적인 목적은 민주주의를 잘 발전시키고 유지하려는 것에 있지 않을까? 경제발전의 목적이 잘 먹고 잘 놀고, 비행기 타고 외국 여행이나 하고, 프로야구장에 가서 열광하는 것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발전의 목적이 민주주의를 잘 발전시키고 유지하려는 것에 있다면 그것의 내용은 뭘까? 그것은 공평한 룰이 적용되고 유지되는 사회, 파인플레이가 전개되는 환경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것은 곧바로 진실과 정의라는 명제와 연결된다. 다시 말해 공정한 사회가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요체이며 경제발전의 목적지라는 것이다.
공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의 전면에 나서서 힘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우선 공명정대해야 한다. 소인적인 기질을 극복하고 대인적인 풍모를 지녀야 한다. 거짓과 모략과 꼼수에 연연하지 말고, 진실과 정직과 양심을 지향하며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려는 쪽으로 처신해야 한다.
자신의 영달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 쪽으로만 혈안이 되어 있다면 자신도 불행해지고 나라도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기틀을 망각하거나 무시한다면 공정한 사회는 절대로 성립되지 않는다.
국정원 선거개입,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국가의 기관이 일개 정파의 노리개로 전락한 듯 선거에 개입한 '국정원사건'은 시국선언에 참여한 281명 역사학자들이 지적한 말 그대로 국민주권을 유린한 사건이며 국가의 기틀을 문란케 한 중대 범죄이다.
인터넷 사이트의 댓글을 이용한 여론조작 행위로 노출된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적발되었을 때 경찰 수뇌부는 이 사건을 은폐하고, 거짓내용을 언론에 발표했다. 경찰도 국가의 경찰이 아닌, 일개 정파의 노리개로 전락해버린 순간이었다.
국정원사건이 노출되고, 경찰의 은폐 시도와 검찰의 봐주기 수사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집권당인 새누리당과 국정원은 국가 최고기밀인 2007년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내용까지 불법적으로 공개해 이미 세상을 떠난 전임 대통령을 난도질하는 방식으로 이른바 '물 타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집권여당의 물 타기 시도는 또 다른 국기문란 사건으로 비화되고 말았다. 대통령도 볼 수 없고, 법으로 수십년간 공개가 금지되어 있는 국가 최고기밀 문서를 누군가가 몰래 들여다보고, 유출시키고, 조작하고 왜곡하여 선거에 이용해먹은 정황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물 타기 시도가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만 것이다.
물 타기의 효과를 얻기 위해 노무현이 NLL(서해 북방한계선)를 포기했다는 정상회담 회의록 상에 있지도 않은 사항을 물고 늘어지지만, 그 효과는 이미 물거품이 된 상황이다. 그 물거품을 가지고 계속 거품을 만들어내는 짓은 국민을 더욱 피곤하게 만들고 분노를 촉발시킬 뿐이다.
총체적인 국정원사건은 한마디로 현 집권층의 정치력과 국가와 역사에 대한 인식 수준,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태도 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오늘의 총체적인 난맥상이 집약되어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역사학자들이 지적한 '국민주권 유린', '국기문란'은 적확(的確)한 표현으로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훼손임이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