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 한쪽에 꽂힌 <박정희>조갑제닷컴에서 전국 고등학교에 대선이 끝나자마자 '무료 기증'했다.
서부원
그렇다면 보릿고개를 겪기는커녕 그 말 자체를 낯설어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언론 등을 통해 각인된 대로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걸 떠올리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그보다는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미지가 훨씬 더 강력하다.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당선되었다는 건 아이들에게조차도 '상식'이다. 이 점에서만 보면, 어르신들과 아이들의 인식이 일치한다.
다만, 국가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으로서 어르신들이 '아버지와 닮은 딸'이 되길 바라는 것과는 달리, 젊은이들은 '아버지와 별개인 딸'로 자리매김 되기를 바라는 점이 다르다. 그런데도 '제2의 새마을운동'과 '잘 살아보세' 운운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방식이 젊은이들이 느끼기엔 촌스럽고 생뚱맞다.
느닷없이 서울 한복판에 혈세를 부어 박정희 기념공원을 조성한다며 아우성이고, 일부 대학에서는 정권의 눈치를 살피며 '창조경제학과'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또 어느 곳에서는 박정희정책대학원을 설립하는 문제로 벌집 쑤신 듯 시끄럽다. 그런가 하면 전국 초중고 학생들에게 박정희 특별전시회에 참여를 독려하는 공문을 일선 학교에 뿌리기도 했다.
대선이 끝나고 불과 몇 개월 만에 '박정희'는 완벽하게 부활했다. 이미 교과서에 실려 역사적 평가가 끝난 인물이지만, 최근 다시 좀비처럼 되살아나 '현재'를 호령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에 대한 재평가가 실은 '우상화'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88서울올림픽조차 아주 오래 전 '역사'로 여기는 아이들에게, 그의 독재가 우리 현대사에 미친 엄청난 해악을 왜곡하고,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박탈할 우려가 크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올해 1월 초에 기증된 책이 있다. 조갑제닷컴에서 출간된, 총 13권짜리 <박정희>였다.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주변 세 학교 도서관 사서선생님께도 물어보니, 모두가 기증요청을 하기는커녕 '제목조차 처음 안' 책이라고 했다. 당시 우리 학교 사서선생님은, 누가 기증했는지도 알 수 없이 그저 택배기사가 말 없이 놓고 간 상자 속에 들어 있었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필자는 그 뒤 3월부터 도서관 업무 담당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기증된 책은 기증자의 이름과 취지, 기증 시기를 적은 속지를 덧붙이고, 라벨을 달아 서가에 비치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책은 아직 그렇게 하질 못했다. 당시 사서선생님도, 기증도서이긴 하지만 좀 '찝찝'해서 기증도서분류를 미뤄두었다고 한다.
2007년에 출간된, 5년도 더 지난 책을 무료로 기증하는 것은 너무나 속 보이는 짓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딸이 대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으니, 박정희 전 대통령의 '복권'과 '우상화'를 시간문제로 본 것일까. 책을 받아든 순간, 얼마 안 있어 교과서의 기존 서술조차 뒤집힐 날이 머지 않았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하긴 그것을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치의 계절에는 이른바 '알아서 기는' 부류가 늘 있기 마련이다. 이른바 '측근'들에 의해 방송에서,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공문에서 심심치 않게 그 이름이 등장하더니, 급기야 학교 도서관에 뜬금없는 책을 보내 '난세의 영웅' 박정희를 아이들의 뇌리에 심어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 기증된 '박정희 전기'... "이건 '일베충'의 교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