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보아도 먹구름, 저리 보아도 먹구름. 이 구름이 죄다 비가 되었고, 걸으면서 흠뻑 젖었다.
유혜준
지리산 종주 일정을 확정하면서 비가 내리기 않기를 기원했건만 하필이면 지리산으로 떠날 즈음, 장맛비 소식이 계속 이어졌다. 이미 숙소는 예약이 완료된 상태. 지리산으로 몰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을 예상, 첫 숙박일을 일요일로 잡았다. 예정은 지리산에서 3박4일을 지내는 것이었다.
우리는 7일 새벽에 성삼재로 출발할 예정이었는데, 5일에 지리산은 호우로 인해 입산금지가 되었다. 이런, 비가 문제가 아니라 아예 산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6일, 입산금지는 해제되었다. 하지만 7일에는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늘에서 하는 일을 인간이 어떻게 알겠나. 산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허탕을 칠 수도 있다. 그래도 배낭을 꾸렸다.
지리산 종주는 5년만이다. 지난 2008년에 종주했다. 그때도 7월이었다. 그때는 동생도 같이 갔는데 이번에는 남편과 단 둘이다. 그때 일정은 2박3일이었는데, 이번 계획은 3박4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일정은 2박3일로 줄었다.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일정을 줄이고 그냥 내려왔다.
나는 32리터짜리 배낭을, 남편은 38리터짜리 배낭을 꾸렸다. 배낭 안에 먼저 대형 비닐봉지를 넣고 그 안에 젖어서는 안 되는 옷가지와 수건 등을 넣었다. 배낭에 아무리 방수커버를 씌워도 폭우라면 죄다 젖을 수 있다는 것은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다. 그러니 비닐을 이용, 원천적으로 물이 스며드는 걸 막아야했다. 덕분에 걷는 동안 온몸이 비와 땀에 푹 젖었지만, 밤에 대피소에서 잘 때는 뽀송뽀송한 옷을 입을 수 있었다.
부피가 나가는 건 내 배낭에, 무게가 나가는 건 죄다 남편의 배낭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남편은 '포터'로 손색이 없었다. 무게는 재지 않았지만 4일간 먹을 양식에 코펠과 버너, 연료 그리고 기타 등등이 죄다 남편의 배낭 안으로 들어갔던 것.
저 정도라면 안나푸르나도 포터 없이 트레킹이 가능할 것 같다. 나중에 스페인 산티아고에 갈 때 꼭 같이 가자고 꼬드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포터에 보디가드에 요리사까지 겸할 수 있으므로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