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교사는 '승진'에 눈길 주면 안 되나

[서평] 전교조 해직 교사 출신 1호 교장이 쓴 <다시, 학교를 디자인하다>

등록 2013.07.18 14:22수정 2013.07.1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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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학교를 디자인하다> 책표지.
<다시, 학교를 디자인하다> 책표지. 작은숲
지난 6월, 교육전문직 시험 전형에 지원했다. 하지만 1차 서류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지난 2008년부터 18개월여간 민주노동당에 매달 1만 원씩 '합법적인' 경로로 후원금을 지원한 혐의로 진행 중인 형사 소송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재판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내년에도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교원인 교사가 장학사나 연구사와 같은 교육전문직이 되는 것은 일종의 '전직'으로 받아들여진다(물론 장학사나 연구사로 있다가 교장이 되어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게 관례화해 있긴 하지만). 지원을 결심하기 전에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한 이유다. 하지만 나는 전문직으로 바뀌어도 내 교육적인 소신을 나름대로 펼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많이 아쉽고, 또 억울했다.


그런데 그 일련의 과정에서 질문 하나가 내내 내게서 떠나지 않았다. "교사가 있어야 할 곳은 과연 어디인가?" 교사는 당연히 학교에, 학생들 곁에 있어야 하지 않나.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떠올린 질문은 '우문'이다. 그것은, "교사는 학교 아닌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는, 논리적으로 모순적인 전제를 깔고 있으므로 궤변이기도 하다.

교육전문직으로 전직, 학생과 소통 중시하는 내 입장과 어긋나나?

그럼에도 그것은 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몇몇 동료 교사의 보이지 않는 '삐딱한' 눈길도 한몫했다. 그간 내가 학교에서 한 모든 일을 교육청에 가기 위한 '스펙' 준비 정도로 폄훼(?)하는 시선들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전문직으로의 전직이 교실에서 학생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평소의 내 입장과 어긋나는 게 아닌가 하는 자괴심 또한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로도 그 '우문'을 놓고 벌인 고민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최근에 이 '우문'을 풀기 위한 실마리 하나를 얻었다.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에서 엮은 <교장제도 혁명>이라는 책에서였다.

"많은 진보적인 교사들이 교장이 되는 데 관심이 없었던 것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첫째는 교장이 될 수 있는 사람(예를 들어, 승진 점수 관리 교사)은 정해져 있다고 기정사실화했기 때문이다. 많은 교사들이 그 승진 트랙에 들어가기보다는 차라리 아이들에게 더욱 충실한 교육자이길 원해 왔기 때문이다. (중략) 하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이는 교장의 리더십 자체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교장의 리더십은 다수의 교사들을 통제하는 권력이 아니라, 학생들이 경험하는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 <교장제도 혁명>(2013, 살림터) 15쪽


위 인용문에서 '교장' 대신 '교육 전문직'을 넣어 보기 바란다. 내 '전직'을 위한 '핑계거리'가 명쾌하게 보이지 않는가. 학교 위에 군림하고 승진에 목을 매는 관료로서의 장학사가 아니라, 학교와 학생, 교사를 최우선시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행하고 지원하는 교육전문직으로 보내면 된다는 것 말이다.

이 책의 저자 한상준은 전교조 결성과 관련하여 해직을 당한 평교사였다. 이후 그는 교육위원과 교육연구사, 교감, 교장을 두루 역임한 뒤 교사로 발령받아 현재 순천전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대한민국 교육계에서 교사가 교장이 된 뒤 다시 평교사로 돌아가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종의 '금기'다. 그런 금기 같은 것이 있었기에 "교장은 결코 수업을 하지 않는" 교장제도가 그 공고함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거꾸로 말해, 교장이 다시 평교사가 되는 것은 굳건한 성채 같은 교장 제도에 균열을 내는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모두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에 실린 글들은 저자가 학교 현장에서 교장으로 재직하던 때의 경험과 교육 활동을 바탕에 두고 있는 에세이들이다. 특별히 '교육 시선'이라는 부제가 붙은 4장은, 말 그대로 교장 재임 시의 경험 속에서 고민하고 성찰한 교육 정책이나 교육 행정에 대해 저자 나름의 분석과 관점, 소회를 토로하고 있는 부분이다.

대한민국 학교에서 교장은 '제왕'과 같은 존재다. 저자는 어땠을까. 전교조 해직 교사 출신이었으니, 그는 여느 교장과는 달라도 한참 달라야 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사람들의 기대가 컸을 테고, 또 그만큼 그 자신이 가졌을 부담감도 엄청났을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교장 초임 2년을 전남 완도의 작은 섬 학교, 신지중학교에서 일했다. 2년 동안 좌충우돌했던 모습을 떠올린다. 분명 옳은 관점이랍시고 막 밀고 나갔던 것 같다. 학부모님들로부터 적잖은 호응을 얻기도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교육 활동을 추진하면서 자주 허덕였다. 매끄럽게 교육 활동을 진행하지 못한 것은 몸에 배인 교육 운동적 사고를 좀 더 유연하게 현장에 적용하지 못한 탓이었다고 여긴다." ('책을 내며' 중)

위 인용문을 보면, 저자가 '초보 교장' 시절이어서 문제도 많았지만, 나름의 교육적인 확신을 갖고 강하게 밀고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좌충우돌'하고 교육 활동이 거칠게 진행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저자는 그 이유를 "몸에 배인 교육 운동적 사고"에서 찾는다. 이 대목은 '전교조 출신' 교장의 '한계'에 대한 솔직한 자기 고백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위 인용문 중의 "교육 운동적 사고"가 '전교조 출신'이라는 것의 '가능성'을 훨씬 더 많이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 만약 어떤 교장이 나름대로 진정성 있게 교육 운동을 펼쳐온 전교조 출신이라면, 예의 그 "교육 운동적 사고"를 통해 전근대적인 틀에 따라 관성화한 단위 학교 문화를 변혁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대한민국의 학교는, 그런 "교육 운동적 사고"를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변할 수 없는 '공장 시스템' 속의 한 부품처럼 굴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막강한' 교장이라고 하지만, 굳건한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그런 일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책 내용 중에 저자가 교내 우수 학생들을 위한 특별 보충 수업 문제로 '동지'와도 같은 전교조 소속 교사들과 부딪히는 장면이 나온다. 교사의 수업 부담이라는 고질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교원 노조 소속 교사마저도 알게 모르게 포섭해버린 학교 시스템의 위력

수업 문제는 학교교육과정이나 국가교육과정과 연동되므로 교장이 전권을 휘두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교사들은 수업은 교육적 필요 여부와는 무관하게 되도록 수업을 적게 맡으려는 관행적인 의식의 포로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것은 나름대로 '의식이 있는' 교원 노조 소속 교사들마저도 알게 모르게 포섭해버린 학교 시스템의 위력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첫머리에 장황하게 소개한 내 이야기의 끝으로 가보자. 나는 내년에 다시 전문직 시험에 도전할 것이다. 운이 좋아 전문직이 된다면, 학교에 있을 때 아이들을 위했던 마음 그대로 진정성을 갖고 근무할 것이다. 불합리한 교육 정책이나 프로그램에도 비판을 해야 하거나 딴지를 걸어야 할 때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하겠다. 요컨대 '전문직'으로서 위상에 걸맞게 할 말, 할 일은 하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바라건대, 나는 좀 더 많은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이런 생각이나 태도를 가져봤으면 좋겠다. 일정 기간(교직 경력이 적어도 15년 이상이 되어야 교육 전문직에 응시할 수 있다) 학교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들과 지내다가, 승진을 위해 나름대로 점수 관리도 하고 부지런히 연구 활동 등의 공부도 좀 해서 교육 전문직이나 교장, 교감이 되는 전교조 소속 교사가 더 많이 나오면 안 되나. 그리하여 그들이 교육청을 바꾸고 교장 제도를 바꾸는 데 귀한 마중물이 된다면, 대한민국 교육이 조금은 바뀌게 되지 않을까. 이 책의 제목처럼 "다시, 학교를 디자인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힘'이 반드시 있어야겠기에 하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다시, 학교를 디자인하다> (한상준 지음 | 작은숲 | 2013. 6. 10 | 279쪽 | 1만 3천 원)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다시, 학교를 디자인하다 - 전교조 출신 교장 1호 한상준의 교육 에세이

한상준 지음,
작은숲, 2013


#<다시, 학교를 디자인하다> #한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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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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