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본 마틴이 사고 당시 손에 들고 있었던 티 캔과 캔디를 손에 들고 한 흑인 시위대원이 격렬한 어조로 짐머만의 무죄에 항의하고 있다.
김명곤
이번 사건은 예상대로 최종 평결에 이르는 데 큰 진통을 겪었다. 당초 6명의 배심원들은 짐머만의 '유죄' 여부를 가리는 데 3:3으로 팽팽하게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유죄를 주장한 3명 가운데 2명은 과실치사로, 1명은 2급 살인죄로 판단했고, 나머지 3명은 무죄를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간이 흐르며 유죄를 주장한 3명도 결국은 짐머만 측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다'는 일관된 진술에 설득 당하고 그의 '정당방위'를 인정했다.
백인 아버지와 히스패닉 어머니를 둔 짐머만은 2012년 2월 26일 올랜도 북부의 인구 5만 여명의 샌포드시 타운하우스(다세대 주택) 동네에서 17세 흑인 청소년인 트레이본 마틴을 살해한 혐의로 2급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짐머만은 자신의 행위가 정당방위였음을 줄곧 주장해 왔다.
마이애미 거주자인 마틴은 사건 당일 출입자를 통제하고 있는 '게이티드 커뮤니티'에 있는 아버지 약혼자의 집을 방문 중에 있었다. 사건 당시는 어둑어둑한 오후 7시경이었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스포츠 중계를 시청하던 그는 자켓에 달린 후드를 쓰고 잠시 집을 나와 동네 세븐 일레븐에 들러 스킷틀 캔디 한 봉지와 티 한 병을 사들고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때 경찰 지망생이자 동네 방범 자원봉사자(네이버후드 왓치)였던 짐머만이 마틴을 수상히 여겨 SUV 차량에 탄 채 그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짐머만은 곧 911에 전화를 걸어 후드를 쓴 수상한 사람이 동네에서 어슬렁 대고 있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그만두라, 우리가 갈 때까지 쫓아가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짐머만은 이를 거부하고 계속 마틴의 뒤를 쫓았다. 마틴은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수상한 사람이 내 뒤를 쫓고 있다"고 했고, 여자 친구는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둘 다 권유를 무시하고 어느 순간에 맞딱뜨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의 '법적' 판단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둘은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누군가가 '헬프 미(도와줘요)'라고 소리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짐머만이 총을 발사했고 마틴은 현장에서 죽었다. 개를 데리고 먼 발치에서 산책을 하던 사람이 얼핏 투닥거리는 광경을 보았고 '헬프 미!' 소리를 들었으나, 어둑한 날씨인데다 거리가 멀어서 몸싸움에서 누가 우세를 보이고 있었는지, 누가 '헬프미!'라고 소리를 질렀는지 명확히 보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플로리다의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은 앞선 상황, 즉 사건의 시발이 된 짐머만의 스토킹과 경찰의 명령 거부보다는 두 사람이 조우한 가운데 (생명) 위협적 상황이 발생했는지 그리고 누가 생명의 위협을 받았는지에만 집중하게 된다. 이때문에 '헬프 미'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몸싸움에서 위에 깔고 올라탄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려내는 일이 재판 과정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우선 '헬프미!'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내로라하는 음성분석 전문가들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인공을 명확하게 가려내지 못해 증거로 채책되지 못했다. 남은 것은 싸움 중 누가 위에서 올라타고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짐머만을 2급 살인죄로 늑장 기소한 검찰은 음성분석에서와 마찬가지로 몸싸움의 상위 인물이 짐머만이었다는 점을 입증해 내지 못했다. 대신 정황 증거만을 들이대며 짐머맨의 유죄를 입증하려 했다.
검찰은 짐머만이 버지니아에서 경찰직을 신청한 적이 있고, 사건 당시에도 범죄학을 공부하던 '열혈 경찰지망생'으로 그의 '과잉 행동'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음을 지적하고 나섰다. 또한 짐머만이 동네 방범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근래 수차례의 911 통화에서 거의 매번 '흑인'을 들먹인 점, 트레이본에 대한 경찰과의 통화에서는 비속어와 함께 '불량배'(punks) 라고 묘사하거나 '이 자식들은 언제나 날쌔게 달아나지'(These asshole, they always get away)고 말한 점을 들어 총기를 소지한 짐머만이 화가 난 상황에서 직접 해결할 결심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짐머만 측 변호인은 마틴이 몸싸움을 하면서 억울하게 살해당했음을 증명할 만한 실질적인 증거를 검찰이 단 한 가지도 제시하지 못한 채 정황 증거에만 기대왔다고 꼬집으며, 배심원들이 증거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추리에 의존하는 것은 절대 삼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배심원단은 '유죄를 입증할 수 없으면 무죄(not guilty until proven)'라는 법리적 원칙에 동의해 짐머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재판이 끝난 이틀 후 'B37 배심원'의 인터뷰는 다소 적극적인 해석에 의해 짐머만에게 무죄가 내려졌음을 보여줬다.
이 배심원은 "마틴이 먼저 공격을 했고, 싸움 중 밑에 깔려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는 짐머만 측의 주장을 결국 배심원들이 믿게 되었다"면서 "이번 사건이 인종적 편견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십 파운드(일부 주장 50파운드)나 더 나가는 짐머만이 마틴에게 깔려 생명을 위협당하는 공격을 받을 수 있느냐는 이의 제기도 무위에 그치고 만 셈이다.
이 배심원은 "우리는 최선을 다했으며, 짐머만의 무죄 결론을 내리면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짐머만은 차 안에서 나와 소년을 뒤쫓지 말았어야 했다, 그의 지나친 열성이 비극을 불러왔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는 살아 있었을 것이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짐머만은 법적으로는 무죄일 수는 있겠지만, 윤리적으로도 그렇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끝나지 않은 짐머만 재판... 거세게 부는 '후폭풍'일단 미국의 언론과 여론은 짐머만 사건이 '법대로' 되었다는 데 대해서는 별 이론이 없는 듯하다. '짐머만 무죄' 평결에 대해 '유죄를 입증할 수 없으니 무죄'라는 소극적 법리 해석에서부터 한 배심원의 주장처럼 '짐머민이 생명의 위협을 받아 총을 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인정된다'는 다소 적극적인 무죄 주장이 있지만, 이같은 해석에 반기를 들고 있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이번 사건의 평결과 관련하여 인종적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는 여론이 여전히 비등하고, 무엇보다도 무죄 평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에 대한 시비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당장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의회(NAACP)와 민권단체들은 전국적으로 마틴 추모 집회와 더불어 짐머만 무죄 항의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흑인 민권 운동가인 알 샤프톤은 사건 발생지인 샌포드시에 대해 "21세기 버밍햄과 셀마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이번 사건을 인종 문제로 해석하는 입장을 보였다. 앨라배마주의 버밍햄과 셀마 시는 1960년대에 각각 교육과 투표권을 이슈로 흑인 차별철폐 운동이 격렬하게 발생했던 곳이다.
미국민권변호사협회도 애당초 이번 사건이 인종적 편견에 의해 저질러졌으며, 6명의 배심원단이 히스패닉계 한 명을 빼고는 5명이 백인으로 구성된 것부터 문제를 삼고 있다. 초기 1차로 걸러내 선정된 25명 안팎의 배심원단 가운데 10여 명은 흑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검찰과 변호인단은 이 가운데 6명을 최종 선정하면서 흑인을 단 한 명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검찰과 양측 변호인단은 법적 기준에 따라 선정한 배심원단인 만큼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플로리다 유력지인 <탬파베이타임스>는 플로리다의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 관련 사례 조사에서 총기 사용 대상의 인종에 따라 무죄 판결을 받는 비율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령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과 관련된 200건의 사례를 조사한 결과, 총격 사망자가 흑인일 경우 총격을 가한 사람의 73%가 무죄 판결을 받은 반면, 사망자가 백인일 경우 59%만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로스앤젤레스, 뉴욕, 시카고, 디트로이트, 애틀랜타, 마이애미 등 미국의 크고 작은 도시들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으며, 일부 도시에서는 폭력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정작 사건 발생지인 플로리다 샌포드 시는 아직 큰 움직임은 없지만, 제시 잭슨과 알 샤프튼 등 흑인 지도자들이 이 지역을 곧 방문할 예정이고, 이를 계기로 지난해와 같이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면서 전국적으로 그 여파가 미칠 가능성도 있다.
연방 법무부 개입... 다수의 민사소송도 이어질 듯 한편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난 짐머만은 가족들조차도 행방을 알지 못한 채 모처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공개 장소에 다시 얼굴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이번 판결의 결과로 인해 전 미국의 여론이 들끓고 있는 데 대해 위기 의식을 갖게 된 연방 법무부가 개입할 의사를 보였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 법무부의 어떠한 '액션'에 대해서도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연방 법무부는 15일 FBI와 플로리다 법무당국으로부터 이번 판결과 관련한 증거들을 수집할 계획을 발표하면서 "경험있는 연방 검찰들은 (이번 사건에서 무죄판결을 이끌어낸) 증거가 우리의 법 체계 내에서 연방 인권 범죄 규정에 배치되는지에 이어서 연방법에 의한 처벌이 가능한지 결론을 내릴 것이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놓았다.
짐머만은 다수의 민사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법이 지배하는 민권변호사위원회(LCCRUL) 바바라 안와인 회장은 14일 <유에스에이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재판 결과를 어떤 시각으로 보든 간에 분명한 것 가운데 하나는 만약 짐머만이 그 당시에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면 마틴은 현재 살아 있을 것이란 점이다"면서 "마틴의 가족이나 시민 단체들의 민사소송을 통해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줄 기회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플로리다 잭슨빌의 형사 소송 전문 변호사인 랜디 리프는 "마틴 측이 형사 재판에서 패했지만 증거의 기준이 낮은 민사소송에서는 승소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형사소송에서는 배심원이 '합리적 의심'을 가질 경우 무죄를 평결할 수 있지만 민사소송에서는 트레이본의 죽음에 짐머만이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판결을 얻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형사소송에서 이기고도 민사소송에 패한 O.J. 심슨의 경우를 염두에 둔 언급이다.
짐머만 측의 마크 오마라 변호사는 14일 판결 후 가진 인터뷰에서 "(상대편의) 완패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민사 소송이 나올 것인지 지켜보겠다"며 느긋한 태도를 보이며 "만약 누군가가 짐머만을 고소한다면 이에 대해서도 철저히 대비할 것이며 승소할 것으로 본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결과가 어떻든, 검찰 측이 지난 13일 재판 과정의 최종 논고에서 말한 것처럼 짐머만은 트레이본 마틴의 피값을 평생 안고 가야 할 듯하다. 샌포드 경찰 당국은 그가 권총을 되돌려 달라고 요구할 경우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되돌려 주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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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머만, 마틴의 피값 평생 안고 가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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