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술을 거기 모인 사람들은 혁명가라 칭 했습니다.
행사 전단지 발췌
'소설가 안재성과 함께가는 울산역사기행.'
한 페이스북 친구가 선전물을 하나 올렸습니다. 제 눈에 띈 건 소설가 안재성 작가가 아니라 그 아래 쓰여진 이름이었습니다. '잊혀진 울산의 혁명가 이관술.' 그 문장에 제 마음의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소설가 안재성 작가도 누군지 모르지만 혁명가의 삶을 살았다는 이관술에 대해서도 몰랐습니다. 아니, 어떤 삶을 살아야 혁명가가 되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이관술 이란 인물이 어떤 인물이기에 혁명가였고, 수많은 혁명가들이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는데 그는 왜 잊힌 걸까'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참가비 1만 원을 준비해 모임 장소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범서읍 선바위 휴게소로 오라고 했습니다. 동구에서 같이 승합해 가실분 없으신가 찾아봤습니다. 문의를 하니 행사 담당이 동구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잘 됐습니다. 지난 14일 낮 12시 30분 함께 갈 분을 만나 승용차를 타고 기행할 장소로 갔습니다. 30여 명 정도 되는 인원이 모였습니다. 울산에는 선바위라는 유원지가 있습니다. 흐르는 강 한가운데 산 높이 만큼 우뚝 솟은 바위로 된 섬. 그곳을 그곳 분들은 선바위라 불렀습니다. 그 옆에 선바위 휴게소가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재성입니다. 저는 그동안 수많은 인물을 탐구하고 책으로 엮어보기도 했는데요. 그중에 이관술 선생이 가장 마음에 남는 분 입니다. 처음엔 '조국엔 나의 감옥 밖엔 없었다'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가 더 보강해 '이관술'이란 제목으로 다시 펴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후텁지근한 날씨였습니다. 간혹 비가 내리기도 했습니다. 안재성 작가는 말을 이어 갔습니다.
"이관술 선생은 이곳 범서읍 입암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관술 선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기로 소문이 나있었습니다. 선생은 겸손하고 성실한 분이 셨습니다." 휴게소 자리 하나를 빌려 모두 앉아 잠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생가를 방문하러 갔습니다. 생가는 집터에 새로 지은듯한 현대식 건물로 돼 있었습니다. 그 동네는 300여 년간 이씨 집성촌이라 했습니다. 이관술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관술의 친척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 이관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친척은 이야기하면서도 조심스러워 했습니다. 혁명가의 삶을 살아 그런가 생각됐습니다.
"저는 가족이지만 작고하신 그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럽습니다. 우리 동네는 예로부터 유림활동을 많이 한 동네입니다. 어느 분들은 독립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광복이 맞다고 봅니다. 독립은 떨어져 나오는 뜻을 가졌고 광복은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났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독립보다는 광복이 맞지 않나 생각됩니다."
1930년대에 '주 40시간 노동' 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