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카피가 선명히 잘 나와 있다
이대로
둘째는 너무 많은 정보가 담겨 있어서다. 강의 형식이기 때문에 참 많은 예시를 들었다. 유명 인사의 명언부터 시, 미술, 영화, 책의 내용들, 광고 이야기까지... 물론 좋은 예시들이다. 작가의 풍부한 독서 소양과 인문학적 관심은 대단하다. 게다가 이런 예시들의 상당수가 '현대'로부터 찾는 것이 아니라 '첨성대, <나의 조국> 음악, <맹자>' 등 소위 '고전(Classic, 3번째 단어)'으로부터 뽑아 올렸다는 것이 흥미롭다.
하지만 그 모든 내용과 예시들을 230여 페이지의 한 권의 책에 담으려니 그 예시가 받들어야 할 주제보다 예시 따라가기에 급급한 느낌이다. 마치 맛있는 횟집에 갔는데 정말 맛있는 '곁들인 음식(스키다시)'이 계속 나와서 정작 마지막에 나온 회의 맛은 잘 느끼지 못한다고나 할까? 정말, 아쉽지 않은가? 횟집에선 회를 먹어야 되는데...
작가가 선정한 8가지 단어. 정말 좋은 단어들이다.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들을 잘 선정했다. 하지만 그 주제를 보여주기 위한 예시가 많다보니, 정작 그 주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기 힘든 것이다.
오히려 나는 이 책에서 다른 예시들보다 작가의 이야기가 좋았다.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얘기한 것이나 예전에 썼던 칼럼('여자는 꼭 여자답게 걸어야 하는가') 내용이 좋았다. 자신의 것은 더 힘이 있다고 하지 않나. 작가가 책을 읽고, 한 번 거쳐서 독자들에게 건넨 내용보다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쓴 것이 더 힘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그냥 여러 책들을 아무 생각 없이 베낀 책들과는 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다. 작가의 사회, 인생을 바라보는 남다른 안목(見, 4번째 단어)이 책에 잘 투영된 것 같다. 첫 번째 단어 '자존'에서의 '내 안에 있는 걸 보라'와 여섯 번째 '권위'의 '문턱증후군' 등 작가가 나름 새롭게 정의한 용어들이나 표현들이 참 마음에 든다. 아마도 수십 년, 몸담고 있었던 광고판에서 나온, 그리고 만만치 않은 독서에서 나온 창의력과 통찰력의 산물이었으리라.
다음 책을 기대한다많이 폄하했지만, 이 책이 인생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류의 책을 별로 접해 보지 못한 사람들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일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의 다음 행보를 주목해 본다.
감히 조언하자면, 한 주제에 대해 조금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어떨까? 여덟 단어가 아니라 '한 단어'를 깊이 조명해 보는 것이다. 작가가 본 좋은 책들, 경험한 모든 것들, 광고의 모든 자료들을 그 단어에 집중해서 쏟아 붓는다면 그 주제의 깊이는 얼마나 깊겠는가! 또 그 주제를 접한 독자들은 얼마나 그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겠는가! 그리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겠는가?
굳이 예시를 들자면, 작가도 책에서 언급한 박경철씨의 <문명의 배꼽, 그리스> 같은 책 말이다. 이 책은 단순히 여행기가 아니다. 그리스를 통해 인간의 모습에 대해 담담히 그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책의 갈피마다 박경철씨의 엄청난 독서의 편린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모든 사람이 배부르게 먹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박경철씨는 전문성이나 독서의 내공으로 보자면, 충분히 다른 주제의 베스트셀러를 써 내려갈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작가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책을 얼마나 잘 쓸 수 있겠는가. 그런 그가 이런 책을 낼 수 있다는 뚝심에 놀랐다.
깊이 있고, 가능성 있는 박웅현씨의 다음 책을 기대한다. 여러 단어보다 한 방이 있는...
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북하우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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