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에서 300일 가까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노조 천의봉(위), 최병승 조합원. <자료사진>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우리는 통상 '노동자계급'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은 신자유주의가 수십 년 동안 구미권에서, 그리고 거의 15년 동안 국내에서 각각 버틸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그 '노동자계급'을 철저하게 분산, 파편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지금 우리에게 '단결, 투쟁'을 함께 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내부 결속이 가능한 대자적인 '노동자계급'이 있는가요? 다소 심한 경우지만, '대학교'라는 '지식경제'의 한 중요한 공장을 보시죠. 제가 한때 다녔던, 그때만 해도 '민족고대'라고 부르고 교수들 사이에서도 급진주의자들이 약간 보였던 고려대 정교수의 평균 연봉은 약 1억5468만 원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한 달에 약 1300만 원 정도가 될 셈인데, 거기에 비해서 비정규직 시간강사가 평균적으로 한 달에 받는 120~130만 원은 약 10배 낮은 것으로 드러납니다. 같은 자격증(박사학위)을 가지고, 같은 노동을 하는데 보수 차이가 10배라면 과연 '같은' 노동자일 수 있을까요? 거기에다가 전임교수에게 주어지는 각종의 지배층 포섭 기회 (<조선일보>에의 기고부터 정부 요직 차지하는 일까지)까지 계산하면, 적어도 대학의 경우에는 '노동자계급'의 최상위가 이미 체제 안으로 완벽하게 편입됐다는 것을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포섭이 가능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시간강사에 대한 초과착취로 얻어지는 잉여를 전임교수들에게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간강사들의 노조 조직비율이 과연 왜 1.8%에 불과할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강사는 그나마 - 그 월급이 시간강사 보수의 60~70%에 될까 말까 하는 대학 청소노동자 등 진지한 '최말단 비정규직'들과 달리 - 그래도 언젠가 '귀족화'될 확률, '귀족화'는 못 되더라도 정부 연구직 공무원이라도 될 확률이 좀 있기 때문입니다.
저학력 말단 비정규직들에게는, 그런 희망마저도 전무합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가장 치열하게 투쟁하는 주체는 요즘 과연 누굴까요? 맞아요. 학생들도 아니고 바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입니다.
한국에서 '교수'의 특수한 위치 등을 고려하면 대학은 좀 특별한 케이스긴 합니다. 그러나 경향은, '일반' 공장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발생된 현대자동차를 보시죠. 물론 그쪽 정규직 노동자들을 '귀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고려대 정교수라면 아마도 '귀족'은 맞겠지만, 심하면 일년에 3816시간(!)까지, 즉 미국이나 일본 자동차 공장 노동자보다 두 배(!)나 일해야 하는 현대차 노동자는, 궁극적으로 회사 주주들에게 그들의 돈벌이를 위한 '인간기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의 손에 - 살인적 노동의 대가긴 하지만 - 한 달에 270~280만원 가까이 주어집니다(관련기사:
연봉 1억원, 현대차 '귀족노동자'의 비애).
'귀족'은 말도 안 되지만, 적어도 자녀들을 대학 보내고 가끔 가다가 동남아 휴가를 갈 정도가 되는, 중산계층 하부층에라도 편입될 수 있는 수준의 돈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투쟁에 나선 비정규직들의 임금은? 똑같거나 더하는 수준의 살인적 노동이지만, 실제 손에 들어오는 돈은 한 달에 100만 원에서 150만원 선이더랍니다(관련기사:
"비정규직 연봉이 5438만원? 죽도록 일해도 안 돼").
거의 두 배 이상의 차이죠. 맞벌이로 하더라도, 100만 원 버는 노동자는 과연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가 쉬울까요? 그런 노동자에게 바캉스가 의미 있을까요? 그 노동자의 소속은 어디일까요? 맞아요, 중산층 하층부도 아니고 도시빈민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같은 '노동자계급'이다 하더라도, 신자유주의 시대에 그 안에서는 이미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세계들이 존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노동자계급을 파편화시키는 자본은, 이렇게 해서 그 '단결, 투쟁'을 원천 봉쇄시키려고 하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입니다.
희망버스, 자본·국가의 파편화에 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