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인시장 나만의 도시락.
이미선
시장 안에서 카트를 끈다. 게다가 무빙워크로 2층을 오를 수도 있고, 문화강좌와 영화 관람도 가능하다. 그런 시장이 어딨어? 있다. 경북 경산시 하양읍에 위치한 하양공설시장에는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경계가 무너진 현대식 전통시장이 문을 열었다.
1931년 개설된 80년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하양공설시장은 4일과 9일이면 260여개의 노점상들이 즐비한 5일장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2009년 시장의 현대화에 매스를 댄 경산시는 문화관광형시장특성화사업을 통해 지하 1층 지상 3층 2개동으로 연결된 전통시장 건물을 만들었다.
올해 5월 8일 문을 연 하양공설시장은 대지면적 6995m²(2116평)에 연면적 9108m²(2755평), 건축면적 3997m²(1209평)로 국내 최초 마트형 전통시장이다. 국비 75억 원과 도비 1억 원, 시비 108원 등 시설 및 경영선진화에 따른 공사비만 자그마치 184억 원이 투입된 하양시장은 경산시 내 경산시장, 자인시장과 함께 3대 시장으로 사랑받고 있다.
하양읍의 경우 인구가 2만7천 명에 불과하지만 유동인구는 6만여 명. 그도 그럴 것이 하양읍은 전국에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대학가가 밀집된 지역이다. 시장반경 10km 내 7개의 대학들이 존재하는데 대구대학교, 대구카톨릭대학, 경일대학, 경산1대학, 대경대학, 영남대학교, 영남신학대학 등이다.
이번 시장현대화사업의 가장 큰 핵심은 젊은 유동인구를 잡을 만한 경산시의 노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와 젊음이 상존하는 전통시장. 꿈의 시장이라 불릴만한 지역의 산물이다. 지난 5일 찾은 하양공설시장은 곳곳에 아직 입점하지 않은 점포들이 눈에 띄었으며 아침부터 많은 비가 내린 탓인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시장이 현대화되면서 크게 달라진 건 전체 점포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2층과 연계된 쉼터를 통해 살아있는 토끼를 보고 만질 수 있는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2, 3, 4층에 이르는 주차장에는 107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A동과 B동으로 두 개동이 연결돼 있는 하양공설시장은 109명의 상인이 영업 중에 있고 이중 70명의 상인들이 제2기 상인대학교육을 수료 중으로 친절과 서비스, 상품진열 등과 같은 시장의 영업마인드를 익히며 실천하고 있다.
A동은 주로 물을 사용하는 수산물과 정육점, 채소전, 건어물, 반찬가게, 양곡, 푸드코트가 자리하고 있다. 2층은 옷가게와 한복집, 미용실, 컴퓨터수리전문점, 열쇠가게, 그릇전문점, 신발가게 등이 입점해 있으며 B동 2~4층은 주차장으로만 이용된다.
B동 1층에는 철물점과 방앗간, 전통먹거리 등을 맛볼 수 있는 국밥집 등이 대를 잇고 있는데, 60년째 전통을 잇고 있는 명품가마솥곰탕 하인수(57·경산 하양읍 금락2리)씨는 어머니 김순남(80)씨에 이어 지난달 28일 현대시설이 들어선 하양공설시장 B동 1층에 국밥집을 냈다.
하인수씨는 "엄마가 재래시장이던 이 시장터에서 이름도 없이 60년간 국밥을 말아 파셨어요. 그땐 뭐 크게 비법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엄마가 만든 국밥을 먹기 위해 장이 서는 날이면 하양시장 내 긴 줄이 생기곤 했죠. 지금도 살아 계시지만 거동이 불편해 시장에는 나와 보지 못하시죠"라고 말했다.
그래도 옛 5일장 하양시장에서만 맛 봤던 김순남 할머니의 맛이 그리워 딸 인수씨의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들이 많다.
장녀로 서울서 어머니 김씨와 함께 7년을 살다가 하양시장이 현대화건물로 바뀌었단 소식에 다시금 용기를 내 국밥집을 연 하씨는 어머니가 전해준 비법 그대로로 하양시장의 맛을 대표하고 있다.
하양에서만 맛보는 또 다른 별미는 돔배기다. '하양 돔배기'라 칭해지는 이 생선은 얼핏보면 참치를 닮았지만 이곳 하양에는 제삿상에 오르는 귀하고 맛있는 음식이다.
48년동안 남편과 함께 하양시장 어물전을 지키고 있는 김복자씨는 "애들 다 키워놓고 이제는 남편대신 내가 하양시장을 지키고 있다"며 20kg은 훨씬 넘어 보이는 새끼 돔배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돔배기는 하양과 경산, 자인 지역주민들이 즐겨먹는 귀상어 생선인데 부침개나 산적, 후라이로 제수용이나 안주로 사계절 내내 사랑받는 먹거리다.
이대희(50·하양읍 금락리) 상인회장은 사실 시장현대화를 거치면서 시장이름도 갓바위로 바꾸려했다는 일화를 털어놨다.
경산은 원효대사와 설총, 일연이 탄생한 고장으로 팔공산 갓바위가 유명한 곳이다.
지성으로 기도하면 한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갓바위 전설은 경산을 찾는 불심 깊은 신자들이라면 꼭 들러보는 성지로 자리를 잡고 있다. 보물 제431호로 지정된 와촌에 위치한 관봉 석조여래좌상(갓바위)을 보기 위해 경남지역 불교신자들이 수능시험을 둔 자녀들을 위해 자주 찾고 있다고도 귀띔했다.
이대희 회장은 "시장이름을 갓바위로 바꾸면 지금보다 더 많은 관광객 유입이 가능할 거라 생각됐지만 인근 교회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죠. 연간 500~700만명이 이 갓바위를 보기 위해 경산을 찾는 걸 감안하면 시장이름을 바꾼다는 계획도 가히 허튼 생각은 아니겠죠"라고 말했다.
좀 아쉽다는 이 회장은 경북도상인회 사무국장으로 재임하며 올해 3년차 하양시장상인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자신의 본업인 열쇠수리나 설비는 시장 일에 뒤처지기 일쑤. 그래도 관광객과 주민들을 유입할 수 있는 문화강좌나 상시 영화상연, 상설무대설치로 문화와 젊음이 상존할 수 있는 시장은 올해 안에 틀을 마련하겠다는 복안이다.
멀리 태안에서 온 취재진에게 시장 여성상인들이 개발해 만들었다는 안졸리나사탕과 껌을 소개한 이 회장은 대추와 자두, 포도, 깻잎, 묘목 등의 경산 대표 농수산물시장으로 자리하겠다는 다짐도 빼놓지 않았다.
김상우 경산시청 문화관광과 관광진흥담당 |
경산시는 이달 1일 대대적인 인사를 마쳤다. 1년 6개월간 하양공설시장과 동고동락한 김상우 전 하양공설시장담당이 문화관광과 관광진흥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5일 오후 4시 경산시청 문화관광과 사무실에서 김상우 계장을 만났다.
시설이 현대화되면서 상인들에게 찾아온 변화는 단연 연령층 제한에 있다. 경산시는 젊은층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의 이미지에 걸맞게 상인들의 연령을 60대 이하로 대폭 낮췄다. 상인 대부분이 60~70대이었던 전과 비교해 지금은 50대가 주축을 이루고 70대는 3~4명에 불과하다.
심지어 78년생 상인이 생겨났을 정도.
매장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거나 임대해 판매하는 등의 방법으로 상인들이 젊어졌다.
김 계장은 시장활성화는 상인들의 몫이다는 일념으로 상품진열에 대한 교육과 신용카드기사용법 등을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저녁 8시부터 교육시키기도 했다. 매출이 좋은 식육과 선어코너를 더욱 확대시켜 시장으로의 인구유입이 크도록 장려했다.
이런 하드웨어적 건물 신축에 발맞춰 올해 문화관광형시장으로 선정된 하양시장은 국비 10억원을 포함해 3년간 20억원의 사업비도 지원받게 됐다.
이 돈으로 택배, SNS, 인터넷 공동구매 등의 소프트웨어적 변신을 시도한다고 김 계장은 밝혔다. 더불어 그간 시장상인들과 인근 중소매장 상인들과의 갈등의 골이 법정공방으로 비화돼 어려웠던 만큼 이를 만회하기 위한 지역 내 소비장터 활성화와 유통전문가 상시채용, 시장 브랜드 개발 등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경산시청은 매월 3번 경산시장과 자인시장, 하양상설시장에 들러 100여명의 공무원들이 오전 1시간 장을 보고 점심을 먹는 전통시장장보기 행사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김 계장은 "앞으로 하양까지 지하철 증축과 주말 및 야간시장 개장, 분수ㆍ이야기공원 설치, 갓바위 투어버스, 삽살개육종연구소 등과 연계한 하양전통시장활성화에 주목해 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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