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넘어서는 획기적인 사회정책 '기본소득'

[서평] 스키델스키 부자가 쓴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등록 2013.07.05 17:50수정 2013.07.0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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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나본 책들 중에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책들이 눈에 자주 띄었던 것은 우연일까. 영국의 정치 사상가 데렉 윌이 지구에 대한 자본주의의 공격을 늦추고,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생태사회주의'를 소개하고 있는 <그린 레프트> 그리고 르포 작가 스티브 브루워가 라틴아메리카의 의료 혁명을 소재로, 자본주의 의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라틴아메리카 의사들을 통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사회 창조'의 가능성을 통쾌하게 보여주고 있는 <세상을 뒤집는 의사들>이 바로 그것이다.

 무한 경쟁의 쳇바퀴를 벗어나기 위한 담대한 제안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표지.
무한 경쟁의 쳇바퀴를 벗어나기 위한 담대한 제안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표지.부키
이어서 케인스 전기를 써서 세계적인 케인스 연구 전문가로 명성을 떨친 로버트 스키델스키와 공저자인 그의 아들 에드워드 스키델스키가 철학의 부재와 목표 상실의 자본주의를 인식하고 대안적 삶의 방식을 내놓은 책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부키)도 만나봤다.


과연 자본주의는 대체돼 가고, 대체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진실로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정점이고, 인류가 질주하며 달려간 막다른 골목이어서, 이제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는 책 제목 만큼이나 자본주의의 내부에서 길들여진 우리들 모두에게 철학적인 고민을 던져준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은 '끝없는 욕구'에 대한 반론"이라고 밝혔다. 이 짧은 한 문장이 이 책의 성격을 규정짓는다. '끝없는 욕구'는 자본주의에 대한 환유적 표현이다. 저자는 경제적으로 만족할 줄 모르는 현상이 인간의 본성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가 그러한 인간의 성향을 '엄청나게' 강화시켰다고 봤다. 심지어 '괴물'이라는 표현도 주저 없이 쓴다.

"자본주의는 양날의 칼이다. 한편으로는 물질적 여건을 엄청나게 개선시켜 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욕심, 질투, 탐욕 등 인간이 가진 지극히 저열한 특징 몇 가지를 높은 자리로 등극시켰다. 이 책의 소명은 모든 시대와 문명의 위대한 사상가들이 말했던 '좋은 삶'의 의미를 상기하여 자본주의라는 괴물에 족쇄를 채우고 현재의 정책을 바꿔 좋은 삶에 이르는데 도움이 되려는 것이다."(본문 21쪽)

케인스의 예언과 오류

여기서 '좋은 삶'이란 말은 이 책의 핵심어다. 이 책은 그러므로 '성장, 경쟁, 탐욕, 불만족'의 굴레를 벗어나 '좋은 삶'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저자는 케인스 전문 연구가답게 여정의 시작도 '케인스의 예언'으로부터 출발한다.


경제학자 케인스는 1930년에 발표한 에세이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에서 100년 후, 그러니까 2030년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당 15시간, 하루 3시간만 일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전망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지만 그 논지는 의외로 간단하다.

기술이 진보하면 생산량이 증가하므로 생계를 위한 노동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그리 되면 경제적인 걱정거리에서 벗어나 인간은 처음으로 자신의 문제와 대면해 자유와 여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어떻게 현명하고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인지 등의 문제와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주당 15시간, 하루 3시간 노동'이라는 케인스의 예견이 이 책에서 저자가 펼쳐내는 사유의 출발점이다. 즉, 돈을 버는 것 자체는 목적이 될 수 없고, 만약 삶의 목표가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라면 이는 점점 더 뚱뚱해지기 위해서 먹어대는 것과 마찬가지며 그러므로 당연히 돈을 버는 것이 인류의 영원한 일일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케인스의 예견은 실패하지 않았는가. 거의 100년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대부분 여전히 힘들게 일하며 살고 있으므로. 그 이유를 저자는 자본주의의 자유 시장 경제가 고용주들에게 노동 시간과 노동 조건을 좌지우지할 힘을 주며, 우월감을 맛보려고 경쟁적으로 소비하고 싶어 하는 우리 내면의 욕구에 불을 지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저자는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이유도 제시한다. 이는 앞에 언급했듯이 고용주가 노동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으로 생긴 이득을 노동자가 전부 갖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20세기 중반에는 강력한 노동조합이 있었고, 국가도 조세를 통해 부자들의 소득을 빈곤층에게 제분배할 수 있었다. 문제는 1980년대에 미국과 영국에서 레이건과 대처 정부가 들어섰고, 신자유주의라는 '더 강한 괴물'이 득세하면서 이러한 추세가 꺾이고 노동 시간의 감소 추세도 멈췄다는 것. 이때부터는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이 줄어들어 노동 시간을 줄이고 싶어도 줄일 수가 없었다.

"1970년대 미국의 최고위 CEO의 보수가 평균 근로자 보수의 30배를 밑돌았는데, 지금은 263배이다. 영국에서 FTSE에 속한 20개 기업 CEO의 기본급이 2000년에는 근로자 평균 급여의 47배였지만 2010년에는 81배가 되었다. 1970년대 후반 이해 최고 부자 5퍼센트의 소득이 최하 빈곤층 5퍼센트의 소득보다 많아지는 속도가 미국에서는 9배, 영국에서는 4배 더 빨랐다."(본문 61쪽)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케인스 시각의 양면성

케인스는 자본주의를 악덕하다고 봤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한시적인' 발달은 옹호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경제적인 결함이 없이 일정 정도의 풍족함이 있어야 만인을 위한 좋은 삶이 가능해지므로, 그 풍족함이 달성될 때까지 악덕함을 허용해준 것이다. 케인스는 이렇게 말한다. '적어도 100년 넘게 공정한 것은 반칙이고 반칙이 공정한 것인 양 살아야 한다. 반칙이 쓸모가 있고, 공정한 것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칙은 물론 자본주의적 성장이다.

이는 곧 어둠의 협상이다. 마치 지식과 권력과 쾌락을 얻는 대신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 케인스는 물질적 욕구가 유한하다고 추정했고, 언젠가는 그 욕구가 완전히 채워지고, 우리는 자유롭게 더 고상한 일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것이 바로 케인스의 오류였다. 물질적 욕구는 자연적인 한계가 없으며 의식적인 통제가 아니면 끝없이 확대된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이 욕구의 끝없는 확장에 기대에 번성한다. 아무리 성공했다 하더라도 자본주의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좋은 삶의 구성요소인 일곱 가지 기본재

사정이 이러할진대, 케인스가 예견했고 추구했던 '좋은 삶'의 달성을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책의 후반부는 이런 논의를 전개하는 데 대부분 할애하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은 좋은 삶의 구성요소인 '기본재'(basic goods)다.

이때 기본재란 좋은 삶을 구성하는 '좋은 것들'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 기본재를 일곱 가지로 분류했는데, 그것은 '건강, 안전, 존중, 개성, 자연과의 조화, 우정, 여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일곱 가지 기본재가 그 자체로서 좋은 것이지, 다른 좋음, 또는 좋은 삶을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곱 가지 기본재 중 '여가'도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여가는 그저 일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정당한 활동의 특수한 한 형태다. 여가가 기본재인 이유는 여가 없는 삶,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 보내는 삶은 결국 '삶 그 자체를 위한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가는 높은 수준의 사유와 문화의 원천이며,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세계를 참되게 관조할 수 있고, 몰입과 취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에서 기본재다.

그럼 이 기본재는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까. 우선 근본적으로 우리는 영원히 성장할 수 없으므로 성장제일주의의 집착을 내려놓고 그리고 성장을 목표로 삼는 경제 정책도 수정해야 한다. 고삐가 풀려 날뛰는 끝없는 소유욕을 제어하고, 그동안 내팽개쳐왔던 '좋은 삶'이란 개념을 복원해야 한다.

기본재 달성을 위해 저자가 제시한 사회 정책은 좀 더 구체적이다. 고용 조건을 둘러싼 권력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주간 노동 시간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고, 일자리를 나눠서 더 많이 일하라는 압력을 줄여야 한다. 그렇다고 임금을 반드시 줄일 필요는 없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실제로 네덜란드 사람들은 영국보다 더 짧게 일하지만 소득은 더 높으며, 1980년대 폭스바겐은 노동시간을 대폭 줄였지만 생산성은 더 높아졌다.

또한 당연히 소비를 많이 하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므로 소비를 줄이지 않으면 노동 시간도 줄일 수 없다. 하여 '소비하라는 압력 줄이기'도 정책의 한 방향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세'를 제정해 과시적 소비를 통제하고, 그 소비세는 소득을 보장해주는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광고 줄이기'도 마찬가지다. 12세 이하의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일체의 광고를 금지하고, 기업체가 광고비를 업무비로 편성하지 못하도록 하며, 담배 광고에 건강 경고문을 넣듯 광고에도 경고문을 넣어 과소비를 막는 방안이 그것이다.

기본 소득을 조건 없이 지급해야

무엇보다 기본재의 실현에 더욱 요긴한 정책은 '기본 소득'을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방안이다.

"기본 소득은 국가가 그 구성원 전체에게, 혹은 한 사회에서 공인받은 거주민에게, 그가 유급 고용직에 참여하기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혹은 부자든 빈민이든 상관없이, 달리 말하면 한 개인이 어떤 다른 소득원을 갖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그리고 가정 내 동거 방식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지불하는 소득이다."(본문 319쪽)

기본 소득이 보장된다면 국민 모두가 빈곤선 이상의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 시간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효과가 있고, 정규직이라도 파트타임으로 일해도 되는 길이 열리며, 노동자들이 일의 양과 조건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자산을 많이 소유한 사람들과 똑같이 가질 수 있게 된다. 현 정부가 최근 내놓은 '질 좋은 시간제 일자리' 구상도 이런 기본 소득과 연계될 때, 그 진정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스키델스키 부자는 이러한 자신들의 구상을 전개하고 제시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철학적·사상적 논거들을 가지고 와서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자본주의·경쟁·탐욕·불만족·행복·노동 시간·불평등·기본재·기본 소득 등. 단순하지 않는 논점들을 풍부하게 거론하며 가다듬었다. 그리고 자본주의 너머, '좋은 삶'을 추구하자고, 변화의 시간들은 무르익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가 제시한 이 특정한 제안에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좋은 삶의 집단적 비전을 발전시키려 시도하지 않고, 부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아무 견해도 없이, 그저 되는 대로 살아가는 태도는 이제 부유한 사회에는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가장 큰 낭비는 돈의 탕진이 아니라 인간적 가능성의 탕진이다."(본문 349쪽)

주당 15시간 노동과 좋은 삶이라는 케인스의 예견과 구상이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에서 '우리를 위한 경제적 가능성'으로 마침내 이뤄져야 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로버트 스키델스키, 에드워드 스키델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박종현 감수, 부키, 2013년 6월 14일, 1만 6천 원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로버트 스키델스키 & 에드워드 스키델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박종현 감수,
부키, 2013


#자본주의적 성장 #좋은 삶 #일곱 가지 기본재 #기본 소득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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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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