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0일 중림동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재개발 지역의 버려진 생활용품으로 꾸민 전시회가 열렸다. 아트디렉터 박찬국 씨가 전시회 취지와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장정규
정확하게는 서울시 중구보건소 중림동 보건분소다. 6월 20일. 무슨 예방접종이라도 있는지 주민들과 아이들이 많이 모였다. 그런데 예방접종이라면 이렇게 분위기가 좋을 수는 없지 않을까. 사실은 전시회였다. 사람 손을 탔던 생활용품들이 쭉 벌여져 있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열쇠며 국자, 그릇, 우편함 뚜껑들이다. 버려져 방치되었던 시간들이 그대로 묻어난다. 전시회의 명칭은 '중림동 이야기 정원'이었다. 낡은 생활용품들, 이들은 증언하는 중림동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중림동은 과거 사대문(四大門) 바깥 지역으로 시구문(屍軀門)을 나온 시체들이 버려지던 곳이었다. 조선 말기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받으면서 순교자들이 많이 묻혔다. 150년 역사의 약현성당이 이곳에 있는 이유다. 약현성당과 맞닿은 현재 보건소 자리는 을사오적 이완용의 집터였는데 양말공장이 들어섰다가 시가 매입한 후에는 한동안 호박넝쿨만 무성해서 인근에 호박마을이라는 별명을 남겼다.
보건소에서 충정로역 방향으로 맞은편이 바로 1960년대 달동네 풍경이 그대로 남은 곳이다. 해방 후 북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무허가로 점거한 뒤로 그 가족과 후손들이 지금껏 살고 있다. 아파트 단지와 손기정 체육공원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오면 서울에서 남산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언덕이 나온다.
그 지역이 지금 재개발 중인데, 전시된 물품들의 출처이기도 하다. 떠난 사람들이 두고 간, 아무도 찾지 않는 물건들이 보건소로 왔다. 쓰레기장도 아니고 고물상도 아닌 보건소로 왔다. 물건을 챙겨온 이들은 한 무리의 청년들, 예술가들이다.
'기능'만이 존재하는 공간은 사람을 품지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