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가 제시간에 들어가지 않으면 가슴이 쿵쾅쿵쾅해. 고객 컴플레인이 무서우니까…."
김지현
"기사님, 그저께 보낸 옷이 아직 고객님 댁에 도착을 안 했대요. 오늘 오후에 외출할 때 입으셔야 한다는데 오전 중에는 도착하는 거죠?"
택배회사와의 통화인가 보다. "꼭 오전 중에 보내주셔야 해요"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전화를 끊은 언니가 다시 전화기 버튼을 누른다.
"OOO 고객님이시죠? 어제저녁에 전화 주셨던 배송 건, 택배회사에 확인해 보니 물류가 밀려서 못 나갔다고 하네요. 오늘 오전 중에는 꼭 보내달라고 했으니 저녁 모임에 지장은 없으실 겁니다."한참 만에야 전화를 끊는 혜수 언니의 붉혀진 얼굴빛이 서서히 제 색을 찾아간다.
"우리는 택배도 많이 보내거든. 택배가 제시간에 들어가지 않으면 가슴이 쿵쾅쿵쾅해. 고객 컴플레인이 무서우니까…."언니의 설명만으로도 서비스일이 만만치 않음이 팍팍 다가온다.
본격적인 업무는 청소로 시작됐다. 아, 그 전에 할 일이 또 있었다. 바로 진열물품 숫자 맞추기. 전날 퇴근할 때 적어놓은 각 진열대 상품들의 개수가 맞는지 일일이 세야 했다.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진 않았지만 도난 방지 때문인가 보다 했다. 매장에 상품을 많이 꺼내놓지 않는 명품의 판매 전략에 감사해 하면서 열심히 숫자를 셌다. 진열 개수를 맞추고 매장 곳곳을 쓸고 닦으니 오전 10시가 조금 넘었다. 혜수 언니가 나를 매장 안에 놓인 소파로 잡아끈다.
"우리는 일하면서 계속 서 있어야 하니까 틈만 나면 앉아야 돼. 여기 앉아. 이 일이 다른 것보다 서 있는 게 힘들어. 특히 처음 두 주는 다리가 진짜 아플 거야. 나도 눈물 날 정도로 아팠으니까. 오늘 집에 가면 무조건 찬물 받아서 족욕을 해. 잠잘 때는 다리를 베개에 올려놓고 자고…." '틈나는 대로 앉기', 혜수 언니가 내게 알려준 첫 번째 업무지침이다. 소파에 앉아 언니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기도 전에 야속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체조시간이다. 어릴 적 학교 운동장에서 목소리 굵은 아저씨의 "하나 둘 셋 넷" 구령에 맞춰 국민체조를 했던 기억이 났다. 밝은 음악과 함께 고운 목소리의 여성이 순서를 일러주는 백화점에서의 체조는 국민체조보다는 가볍고 짧았다. 이걸로 스트레칭 효과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서비스 지침 숙지로 하루 시작체조가 끝나자 바로 스피커에서 "직원 여러분, 오늘 하루도~"로 시작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내 음성에 맞춰 다 같이 서비스 실천과제와 4대 구호를 외친다. 서비스 실천과제는 매주 달랐다. '매장 내부를 청결하게 하기' '고객이 매장에서 쇼핑하기 편하도록 50cm 이상 떨어져서 응대하기' 등 백화점이 그달, 그 주에 집중하는 서비스지침을 직원들이 숙지하도록 했다.
그에 따라 담당 직원이 불시에 매장에 들어와 서랍에 음식물이 있는지, 피팅룸이 깨끗한지 등을 점검했다. 중·고등학교 때 선도부가 소지품 검사를 할 때면 잘못을 안 했어도 괜히 위축되고 가방과 책상 속에서 물건들이 끄집어질 때면 발가벗겨지는 듯한 불쾌감에 휩싸였는데 성인이 돼서도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다니 약간 서글펐다.
4대 구호도 모니터의 대상이었다. 고객이 올 때마다 맞이 인사,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천천히 둘러보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여기에 추가 멘트,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배웅 인사,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등의 4대 구호를 빼먹지 말라고 조회시간마다 강조했다. 어느 고객이 모니터 요원인 줄 모르니 늘 긴장할 수밖에.
모든 직원이 정자세로 고객을 맞이해야 하는 개점 인사가 끝나자 혜수 언니가 내게 고객상담실로 면접을 가라고 한다. 형식적이나마 백화점 측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면접을 본다고 했다. 순간 '쫄았다'. 혹시 떨어지는 거 아냐. 이 달의 서비스 실천과제와 4대 구호를 알고 있는지를 물을 테니 긴장하지 말라는 언니의 말을 믿으면서 고객상담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상담실 팻말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바닥을 청소하고 있던 아주머니가 말을 건넨다.
"고객님, 어딜 찾으십니까?""고객상담실을 가려고 하는데요.""네, 고객상담실은 이쪽 왼쪽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너무도 친절하다. 백화점은 청소원까지도 서비스교육을 받나 보다. '상량'과 담 쌓고 살아온 내가 과연 저처럼 친절하게 '고객님'이라고 잘 부를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그건 나중 문제, 우선 나는 백화점 면접이란 산을 넘어야 했다. 손에 쥔 종이에 적힌 4대 구호를 다시 한 번 외우면서 고객상담실의 문을 열었다. 면접은 싱겁게 끝났다. 담당자가 자리에 없었다. 옆 직원은 "원래 매장 직원 면접을 우리가 보나?" 의아해하면서 서비스 실천과제랑 4대 구호를 외우라고만 이른다. 괜히 긴장했네, 헛웃음이 나면서 백화점 내 정직원보다 훨씬 많은 비정규직들이 이렇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살겠구나 싶었다.
휴식시간도 들쑥날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