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리까지는 배달을 못해주겠다는 건재상 때문에 승용차에 단열재 스티로폼, 장판, 벽지 등을 싣고 달려야 했다.
조남희
같이 살 동료가 왔다공사 기간 중 집으로 아가씨들이 찾아왔다. "제주도에서 한 번 같이 살아 보실랍니까?"라는 나의 제안에 찾아온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중반의 여자들이었다. 나를 감성적이고 친절할 거라 생각하고 왔을 텐데···. 더위에 '육수'가 줄줄 흐르고 '몸빼 바지'를 입고 서 있는 아저씨같이 털털한 모습에 그녀들이 흠칫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언제 와서 언제까지 있을 생각이에요? 제주도에서 뭐하고 싶어요? 할 줄 아는 건 뭐에요? 혹시 공구 잘 다뤄요? 이 집은 화장실도 밖에 있고 버스도 별로 없는데. 괜찮겠어요?"쏟아지는 질문들에 아가씨들은 한결같이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답했다. 제주도가 그저 좋아서 살아보고 싶다는 이들을 앞에 놓고 나는 일장 연설을 했다. 익명성이 거의 없는 지역사회에서의 삶이 때로는 불편하다는 것, 일자리가 많지 않고 대도시에 비해 급여 수준도 좋지 않다는 점, 여자 혼자 내려왔다고 하면 괜히 한 번 '들이대는' 남자들이 있다는 것, 생활의 불편함, 가끔씩 찾아오는 외로움 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녀들의 대답은 이랬다.
"아…. 그래요?" 말하는 이만 허무할 뿐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야, 말로는 알 수 없는 일들이니 말이다. 여러 가지 어려움과 불편함이 있다고 말해도 그녀들의 제주행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 또한 1년 전 이 아가씨들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별 대책 없이 육지에서 내려왔던 사람이지 않나.
결국 29살 먹은 만화 그리는 아가씨와 7년 다닌 좋은 직장을 접고 제주도에서 목공일을 배우며 지내겠다는 33살 먹은 아가씨에게 "그럼 우리 한번 살아봅시다"며 손을 내밀었다. '좌충우돌, 고군분투 제주 착륙은 이제부터 시작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제 나도, 그들도 혼자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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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는 서울처녀,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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