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백화점의 명품매장. 한 손님이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이 기사 내에 언급된 매장과는 전혀 관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오마이뉴스 박수원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 채 면접을 보러 갔다. 백화점에 들어서기 전 복장도 한 번 더 살폈다. 손에는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이력서가 들려 있었다. 조심스럽게 매장을 찾았다. 명품매장답게 널찍했다. 밝은 조명 아래 고유 로고가 박힌 핸드백들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옷걸이에 몇 벌 안 걸린 옷들은 "난 비싼 몸이야"라고 말하고 있는 듯 보였다.
휑한 매장은 50대로 보이는 여성이 지키고 있었다.
"면접 보러 왔어요? 하게 되면 주로 나랑 일하게 될 거예요." 특유의 싹싹함이 묻어나는 환대에 면접인의 긴장감이 사라졌다. 잠시 후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스럽게 꾸민 또 다른 여성이 매장으로 들어왔다. 나를 환대했던 이가 그에게 "언니, 면접 보러 왔대"라며 나를 가리켰다. 멋쟁이 그녀는 따라 오라면서 나를 백화점VIP라운지로 데려갔다.
"결혼 하고 계속 쉬었어요?" "쉬지는 않고 시간제로 일했어요."출산휴가 3개월을 빼곤 쉰 적이 없으니 그대로 이야기했다. 물론 시간제로 일하지는 않았지만 정상적으로 회사생활을 했다고 하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그렇게 얼버무렸다.
"아이가 어릴텐데 일 하는 거 괜찮아요?""근처에 친정이 있어 어린이집 다녀와서 거기서 놀면 돼요."지난 4년여 간 아들은 그렇게 컸기에 그 역시 그대로 말했다.
점장의 질문은 많지 않았다. 대신 근무조건과 관련한 설명이 길었다. 그의 매장은 중간관리매장이라고 했다. 본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게 아니라 본사에 보증금을 내고 개인사업자로 등록한 그에게 매출액의 몇 퍼센트가 떨어지는 시스템이었다.
그는 본사에서 받은 수수료에서 나를 환대했던 '둘째'(백화점에서는 매장 점장을 매니저, 그 밑 직원들을 경력에 따라 둘째, 셋째, 막내로 불렀다) 언니와 내 월급, 쇼핑백·청소용품 등의 매장 소모품비를 지출하고 나머지를 가져갔다.
그러니 직원 월급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몇 달 전 근처에 문을 연 백화점에 같은 브랜드 매장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고 그가 하소연했다. 긴 설명 끝에 그가 제시한 내 월급은 110만 원이었다.
"대신 내가 점심값으로 한 달에 2만 원 정도 더 넣을게. 내가 여기 매장을 10년 넘게 하면서 여태껏 직원들한테 점심값을 준 적이 없어. 지금 둘째도 안 주고 있고. 둘째가 알면 뭐라 할 테니까 둘째 몰래 넣을게."그걸 생색이라고 낼까. 내 표정을 읽었는지 점장이 두 가지 이야기를 덧붙였다.
"장사만 잘 된다면 월급 그까짓 거 더 주는 거 어렵지 않지. 4~5개월 지나서 120(만 원)으로 올려줄게. 그리고 명품매장에서 일했다고 하면 어디 가든 대우를 받으니까 좀 참고 일해 봐."명품이어서 월급을 더 받을 줄 알았던 내 기대는 큰 착각이었다. 오히려 명품 프리미엄이 임금에서 깎였는지 취업 포털에서 봤던 판매직 급여의 최저 수준인 120만 원보다 더 낮은 액수였다. 아무리 경력이 없어도 그렇지. 1일 10시간 이상 노동에 주 6일 근무인데 110만 원은 너무하지 않은가.
그때 몇 주 전 고용센터 직원이 일자리를 소개해주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음에 안 들면 그냥 거절하세요, 선생님."천사와 악마의 빅매치, 선택은... "내일부터요"아직 실업급여 수급일이 남아 있어서 머뭇거리던 내게 그가 해준 말은 꼭 응원가 같았다. 그의 말을 들으니 구직자의 초조함이 누그러들면서 용기가 생겼다.
'그래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는 거야. 구직자에게도 선택의 권리가 있다고.'그때는 호기로웠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때 왜 객기를 부렸을까 약간 후회가 됐다.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돈가스 등 냉동육을 파는 일이었다. 중소기업이긴 했지만 업체 직영매장이었다. 4대 보험도 됐다. 주5일 근무인데 일주일에 하루를 쉬고 하루치는 휴일근무수당이 돼 월급을 175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경력도 없는데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대부분 '여사'로 불리는 50대 이상의 여성들이 일하는 식품매장에서 내 나이는 파릇파릇한 청춘이었다. 게다가 대학까지 나왔다고 했으니 면접을 본 여성인 이사는 일만 열심히 하면 본사로 데려가주겠다고 했다.
아직 서비스업에 뼈를 묻을지 결정을 안 한 상태였기에 약간 부담스러운 이야기였다. 게다가 냉동육 코너를 혼자 맡아 한다는 것도 걱정이었다. '휴무 때는 대체인력이 나온다고 치고 일할 때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처음 하는 일이니 여럿이 일하는 매장에서 일하고 싶었다.
오전 8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한다는 것도 걸리긴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 차를 타는 시간이 오전 8시 40분이었다. 차 시간을 오전 7시 40분으로 조절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여섯 살 아이는 9시간 이상을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셈이 된다.
어른들도 8시간 노동을 이야기하는 마당에 못할 짓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아이에게 그런 못할 짓을 많이 해왔다. 그런데 그 일자리 앞에 망설였던 건 그만큼 간절하지 않아서였다. 왜냐? 아직은 실업급여로 살 만했으니까. 그래서 고용센터 직원의 조언에 따라 호기롭게 거절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실업급여도 끝난 상태였다. 가계의 어려움이 곧 닥쳐올 터였다. 점장을 앞에 두고 머릿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빅매치를 겨뤘다.
'그래도 110만 원은 너무 하잖아!''여기서 일하면 다른 데 갈 때 유리하다잖아!'갈등하던 비굴한 구직자는 결국 악마의 손을 들어올렸다. 명품 브랜드의 속살을 보고 싶다는 옛 기자의 호기심도 저임금을 감내하는 데 한몫했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냐는 점장의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내일부터 당장이요."(*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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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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