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규탄 집회 "박근혜 책임져"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6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촛불집회'에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규탄하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유성호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를 내건 1987년 6월 항쟁은 노태우 민정당 후보의 직선제 수용이라는 6.29 선언으로 일단락된다. 6.29 선언은 아직까지 '속이구 선언' '미완의 혁명'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국민의 힘으로 직선제를 쟁취했다는 점에서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다.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으로 불거진 일련의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은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물인 직선제에 대한 전면 부정인 셈이다. 대통령 직선제가 수용된 후 치러진 6번의 대통령 선거는 총풍 사건, 차떼기 사건 등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진행됐다. 그러나 국가정보기관이 여론 조작에 앞장서고 경찰 책임자가 거짓 내용 발표를 주도하고, 여기에 여당과 보수언론까지 나서 범법 행위를 동조하고 비호한 행위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래서 더 위험스럽다.
대통령 직선제라는 형식적 직접 선거의 틀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지난 18대 대선은 실질적 직선제를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지금까지 드러난 국정원 댓글 사건의 내용만 보더라도 권력이 밀실의 야합으로 대통령을 만들어내던 과거 체육관 대통령 선거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2012년 12월 19일. 국민들에게는 한 표를 행사하는 소중한 날이었지만, 국정원과 이명박 정부에게는 은밀히 내정한 후보(?)의 당선을 확인하는 날이었단 것인가.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도 다르지 않다.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NLL 포기 발언을 했고 이는 곧 영토 포기와 같다고 몰아붙였다. 영토를 북에 넘긴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선 후보의 안보관이 같을 수밖에 없다는 추론적 결론으로 새누리당은 여론을 자극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야당의 대응은 쉽지 않았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이후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으로 궁지에 몰린 새누리당과 국정원은 또다시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카드를 꺼내들었다. 야당뿐만 아니라 학계와 법조계에서 정상회담 내용 공개는 법에 위반될 뿐더러 좋지 않는 선례를 남길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소용 없었다. 국정원은 '명예를 지킨다'는 이해되지 않는 이유를 내세워 요약본을 국회의원들에게 배포했다. 다음날 일부 언론에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이 그대로 공개됐다.
그러나 결과는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의도와 반대로 돌아갔다. 요약본뿐만 아니라 공개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체 내용 어디에도 NLL 포기 발언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의 서해평화구상안이 합리적이라는 여론이 우세했다. 오히려 궁지에 몰린 건 새누리당과 국정원이었다. 이어 지난 대선 때 김무성 의원의 유세 발언이 정상회담회의록 전문과 거의 흡사해 회의록 전문이 불법적으로 유출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또한 국정원이 만든 요약본과 언론사에 공개된 전문 내용 일부가 달라 악의적 편집 가능성까지 거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