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이발소. 왼쪽으로 빨간 수건과 러닝투런이 표시해 놓은 파란 깃발이 보인다.
심혜진
청년사회적기업 ㈜러닝투런(대표 신윤예·홍성재)이 만든 창신동 지역연계프로그램 '도시의 산책자' 중에서 '삼삼오오 자율산책'을 체험하는 중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5월 30일부터 7월 21일까지 열리는 '반세기종합전 5 - Made in 창신동' 전시와 연계한 프로그램으로, 러닝투런 사무실을 찾는 이들에게 지도와 음성안내기를 무료로 제공해 창신동 곳곳의 소소한 사연을 주민들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이 프로그램은 창신동의 번듯한 건물과 새로 난 큰길 대신 더 좁고 비탈진 골목길로 방문객을 안내한다. 그래서 큰길로 턱턱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지도가 안내하는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길은 대부분 오르막 아니면 내리막이다. '창신시장' '홍표실집' '미스터리 빈집'을 지나 마지막 지점인 '비우당'까지 닿는 데 1시간 30분이 걸린다. 좁고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골목길을 걷는 내내 오토바이들이 쉴 새 없이 달린다. 뜨거운 햇볕 속에 땀은 줄줄 흐르지만 창신동의 속 이야기를 마주하고 나자 처음 와본 이 동네와 꽤 친해진 것 같다.
봉제공장 사이에 예술공간이?창신동은 2층으로 된 봉제공장이 늘어서 수많은 골목길을 만들어 낸 동네다. 먼지가 많이 나 대부분 문을 열어 놓고 작업을 한다. 안을 들여다보면 바닥과 선반이 헝겊 천지다. 1970년대 이후, 평화시장에 있던 봉제공장들이 하나 둘 이곳으로 옮겨와 현재 3000개가 넘는 소규모 봉제공장이 있다. 동대문 의류시장의 탄탄한 배후기지가 바로 이곳이다. 오토바이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이동수단. 원단이며 옷에 필요한 작은 부품들을 좁은 골목길 사이로 부지런히 실어 나른다.
이런 공장들 사이에 예술공간이 둥지를 틀었다. 러닝투런은 예술과 마을을 기반으로 한 청년사회적기업이다. 2011년 신윤재(29)·홍성재(31)씨가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고용노동부에서 주관하는 '청년 등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돼 사업비를 지원받았다. 자비로 마련한 사무실에는 '000간'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000간은 비어있으면서 다른 이름들로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의미의 '0(공)'과 사이·틈이란 뜻의 '간'을 합한 것이다.
신씨와 홍씨는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이들은 창신동에 있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예술교육을 한다. 그리고 000간에서 전시회도 연다. 또 '도시의 산책자'처럼 외부 프로젝트를 받아 진행하기도 한다. 남은 시간엔 창신동에서 어떤 예술 활동을 벌일지 고민하고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동네를 오가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뚝딱 만들기도 한다. 얼마 전엔 주민들이 앉아서 쉬던 평상의 낡은 장판을 걷어내고 새 것으로 바꿔놓았다.
예술공간이라지만, 이곳 주민들은 000간을 그리 어렵게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인터뷰를 하는 중간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동네 주민들이 이곳을 수시로 들러 안부를 물었다. 한 초등학생은 길에서 큰 소리로 "들어가도 돼요?"라고 묻더니, 신씨가 인터뷰 중이라는 손짓을 하자 "안녕히 계세요" 하고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이 동네에 온 지 3년째. 신씨와 홍씨가 이곳에 발을 딛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예술가로서 어떤 삶을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