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조사 받고 나오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권우성
검찰에서는 인터넷 댓글 공작의 지휘체제를 '원세훈-이종명 3차장-민병주 심리전단장-각팀장'으로 적시했다. 검찰은 '원세훈 공소장'에서 그 지휘체제를 조금 자세하게 밝혀놓았다.
"피고인(원세훈)은 매월 개최되는 전부서장 회의에서 국정원장으로서 각종 지시사항을 시달하였으며 이러한 지시사항은 회의 직후 각 실·국장 산하 팀장 회의, 각 팀장 산하 회의 등의 계통을 밟아 전직원에게 즉시 전파되고 (중략) 심리전단의 활동과 관련하여, 위와 같은 월례 전부서장회의와 일일 모닝브리핑에서 피고인이 지시한 사항이 3차장 이○○, 심리전단장 민○○를 거쳐 각 사이버팀장을 통해 사이버팀 전직원에게 시달되며 (후략)."(7-8쪽)검찰에서 파악한 대로라면 원세훈 전 원장뿐만 아니라 이종명 전 3차장도 '무거운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검찰은 이종명 전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정보국장을 모두 기소유예했다. "원장의 지시에 따른 범행으로서 상명하복 관계의 조직 특성 등을 감안"한 판단이었다.
검찰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조차 '3차장 책임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인터넷 댓글 공작과 관련한 이종명 전 차장의 행적조차도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국내파트인 차문희 전 2차장과 박원동 현 국익정보국장이 경찰수사결과 축소·은폐에 개입했다는 정황만 나오고 있다. 이는 심리정보국을 실질적으로 지휘한 곳은 3차장실이 아니라 2차장실일 수 있다는 의혹으로 연결된다.
차문희 전 2차장 아래에 '국익전략실'과 '국익정보국'이라는 조직이 있다. 신아무개 실장이 이끈 전자는 국내정보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부서로, 최근 논란이 됐던 '반값등록금'과 '박원순' 관련 문건을 생산한 곳이다. 박원동 국장이 이끈 후자는 국내정보를 수집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박 국장은 국내정보 수집의 총책임자였던 셈이다. 경주 출신인 그는 "국정원내 국내정치공작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점들 때문에 국정원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해 그를 주목하는 눈길이 많다.
국회 정보위의 한 관계자는 "박 국장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 국정원의 국회 파견관으로 왔고, 이후 2010년 9월 국익정보국장의 자리에 올랐다"며 "국회 파견관은 보통 1년 반 정도 하는데 박 국장이 3년 가까이 일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라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 소속 한 의원은 "검찰이 이종명 3차장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것 같다"며 "이종명 3차장이 (인터넷 댓글 공작을) 몰랐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원세훈-박원동-민병주나 원세훈-목영만(기조실장)-민병주"로 지휘체제가 작동했다면 3차장이 직접 지휘할 수는 없었다는 시각이다. 목영만 전 기조실장은 국정원내 'S라인'(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시 인맥)이다. 이 의원은 "아는 사람이 많으면 위험하기 때문에 (지휘)라인을 최소화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종명 3차장 "선거나 정치상황은 3차장실과 관련없다"'실질적인 지휘체제'와 관련해 지난 2012년 12월 13일 국회 정보위의 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이날 이종명 3차장과 민병주 국장은 새누리당 소속의 Y의원과 아래와 같은 질의-응답을 나눴다.
Y의원 "국내 상황과 관련된 심리전을 하는 거냐?"민병주 국장 "전혀 없다."Y의원 "3차 소관업무가 국내파트?"이종명 3차장 "정보수집과 관련된 파트."Y의원 "국내, 대북 정보수집?"이종명 3차장 "정보수집을 포괄적으로 이해해 달라."Y의원 "선거라든지 정치상황과는 상관없는 일들을 하지 않나?"이종명 3차장 "절대 아니다. (선거나 정치상황은) 3차장실과 관계없는 소관(업무)다." 이날 이종명 3차장은 일관되게 "선거나 정치상황은 3차장실의 업무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6개월간 경찰·검찰에서 수사한 결과, 인터넷 댓글 공작(댓글 달기, 찬반 클릭활동 포함)의 상당부분이 "선거나 정치상황"과 관련된 것들로 드러났다. 검찰에서 작성한 '국정원 댓글작업 범죄열람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검찰은 공소장에서 "정치관여 및 선거개입 범행이 실행되었다"(8쪽)고 명시했다. 국내정치 개입이 명백하게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이종명 전 3차장이 댓글 공작을 실행한 심리정보국을 지휘했다면 그가 이날 국회 정보위에서 한 발언은 '거짓'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심리정보국을 실질적으로 지휘하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의혹에 억울할 수밖에 없다. 당시 국회 정보위에 참석했던 한 의원은 "당시 이종명 3차장이 상당히 억울해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조직적 플레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또다른 전직 국정원 직원은 "2차장이나 3차장이 독자적으로 했다기보다 공동으로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형식적으로야 업무가 분리돼 있지만 국내파트인 2차장이 다 보고받기 때문에 전혀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도 "(댓글 공작은) 일개 국의 일이 아니라 국정원 전체의 일이었다"며 "다만 2차장실 산하 국익전략실과 국익정보국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기조('지침')를 잡은 뒤 그것을 심리정보국에서 실행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3차장 산하에 있는 조직을 2차장실에서 지휘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2차장실 지휘 의혹'을 부인했다. 다만 그는 "차문희 차장이나 박원동 국장이 각각 공을 세우기 위해 (댓글 공작에) 개입했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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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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